항목 ID | GC0190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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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彌勒里窯址 |
영어의미역 | Kiln Site in Chungju Mireuk-ri |
이칭/별칭 | 중원 미륵리 백자가마터,중원 미륵리 백자요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215 점말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길경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4년 12월 30일 - 충주 미륵리 요지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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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충주 미륵리 요지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도요지|백자가마터 |
지정면적 | 17,875㎡[3필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215 점말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개설]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 가마에서는 1,000~1,200°C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 단단하고 채색되거나 푸른빛을 머금은 그릇이 만들어졌다.
[위치]
수안보면 소재지에서 월악산 방향으로 4㎞ 정도 들어가면 지릅재가 나온다. 이 고개를 넘어 미륵리쪽으로 가면 마을 초입에 송계계곡과 미륵리 사지로 가는 두 갈래길이 나온다. 중원 미륵리 도요지는 이 두 갈래길의 왼쪽에 위치한다. 충주 미륵대원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점말의 높은 산록(해발 360~370m) 동남쪽의 경사면에 해당한다. 이곳에는 17~20세기 전반에 걸친 가마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월악산국립공원 내의 미륵리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되었다. 가마터가 위치한 구릉을 따라 도로 개설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1993년 12월부터 1994년 4월 23일까지 70일간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긴급으로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4곳의 가마터와 작업장, 2기의 퇴적층이 확인되었으며, 유적 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도로를 선형 변경하여 개설하게 되었다.
[형태]
1호 가마와 2호 가마는 오름식 연실칸 가마로 자연 구릉에 외벽과 내벽을 진흙과 돌을 섞어 이중으로 축조한 가마이다. 3호 가마는 철화백자를 만들었던 오름식 가마로 경사가 가파르다. 굴뚝의 구조는 좌우벽이 둥글게 안으로 좁아들어 중앙에서 약간의 공간을 두어 연기가 빠져 나가도록 되어 있다.
1호 퇴적층은 가마 바닥에 깔아 사용된 불을 먹은 모래덩어리가 띠를 이루며 백자조각과 함께 쌓여 있다. 2호 퇴적층에서는 17~18세기경의 철화백자 조각들과 둥근 도지미들이 나왔다. 작업장은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주변에는 하얀 백토가 두껍게 깔려 있으며 수비찌꺼기인 모래가 상당히 넓게 분포해 있었다.
[출토유물]
백자와 철화백자는 사발과 대접이 주류를 이루며, 대체로 투박하고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어 구웠으며, 빛깔이 정결하다. 사발과 대접이 주류인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17~18세기경에 생활 용기를 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릇에 표현된 무늬는 포도덩쿨·풀·문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황]
발굴 조사 후 오름칸 가마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여 1994년 12월 30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가마의 상부에 보호각을 설치하고 밖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창살문을 마련하였다. 주변에는 잔디밭을 조성하고 퇴적층에서 나온 백자나 도지미편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충주 미륵리 요지는 조선 후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가마 구조의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가마터다. 또한 철화백자 가마터로부터 출토된 철화백자의 기형 및 무늬의 다양성에서 17~18세기 충청도 철화백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특히, 한국도자사에서 공백기에 해당하는 20세기 전반기, 즉 근대의 가마 구조와 도자기의 기형 및 무늬 등의 양상이 파악된 점은 한국 근대 도자기의 계통을 수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근방인 하늘재와 점말 주변에 아직 조사되지 않은 많은 가마터가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