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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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彈琴臺土城 |
영어의미역 | Tangeumdae To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 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백종오 |
성격 | 성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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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토성 |
건립시기/연도 | 고대 |
관련인물 | 우륵|신립 |
둘레 | 415~420m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 1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대문산에 있는 고대 토성.
[개설]
탄금대 토성은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낮은 구릉에 위치한 고대 토성이다. 탄금대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륵(于勒)이 신라로 망명한 후 이곳 국원(國原)에 안치되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맞서 싸운 전적지이다.
[건립경위]
탄금대 토성은 여러 차례의 조사 결과를 통해 4세기 중후반에 탄금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철을 생산하는 세력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순수 백제 유물만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고구려나 신라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백제계 세력에 의해 경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탄금대 토성이 위치한 충주시 칠금동 산1번지는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과거에는 남한강과 충주천,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샛강이 매립되기 전까지 독립된 섬이었다. 토성은 탄금대의 동북쪽 가장 높은 지점의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충주시가지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금가면, 서쪽으로는 조정지 댐 일원과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위치한다.
[형태]
탄금대 토성의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길다란 불규칙한 말각장방형 내지 타원형이다. 동서 길이 150m, 남북 너비 100m 정도이다. 전체 둘레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는 남한강변의 북쪽 절벽지대를 포함하여 약 415~420m로, 이중에서 토루가 축조된 구간은 동서남벽의 234m이다.
[현황]
탄금대 토성은 동북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서향하여 낮아지는 사면을 둘러싼 토루(土壘)로, 현재는 토성 내부에 사찰·비각·묘지 및 탄금대공원 조성으로 인해 원상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1991년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과 2002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의 지표조사에서 토성의 존재를 확인하고, 무문토기를 비롯한 돌칼·돌도끼 등의 선사시대 유물은 물론 백제 토기편들을 다량으로 확인하였다.
2007년 발굴조사를 통해 토성의 축조방법과 경영시기 등이 밝혀지게 되었다. 먼저 탄금대 토성은 토루의 내측 하부에 강돌을 이용하여 계단상을 이루도록 5~6단의 석열을 축조하여 석심토루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축조 방법은 아직까지 보고된 예가 없는 경우이다. 토층 양상으로 볼 때 중심부에 계단상으로 석열을 축조하면서 동시에 석열을 중심으로 내측은 소토와 숯이 다량 포함된 흑갈색 내지 회갈색토를 성토하였고, 외측은 점토를 판축한 후 석열 윗부분의 중심토루 부분에 일정한 너비를 수평 판축하면서 내외측으로 경사를 이루도록 내외피 토루를 동시에 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성내 시설물로는 3기의 주거지와 저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내지 말각장방형의 수혈주거지로 특히 2호 주거지에서는 용해로 또는 단야로와 관련된 송풍관편과 슬래그 등이 함께 수습되어 공방시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저수시설은 성내 북쪽 중앙부를 향하여 완만해지는 지점에 위치하는데, 평면 형태는 부정타원 또는 말각장방형으로 중앙부가 깊은 바가지 모양이다.
규모는 500×530㎝로 깊이는 60㎝이다. 이곳에서 40여 점에 이르는 철정(鐵鋌)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성내와 성벽 판축토 내부에서 수습되는 유물은 백제 토기 일색으로 고구려와 신라의 토기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백제 또는 백제의 통제를 받는 지방 세력에 의해 축조되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탄금대 토성은 축조 방법에 있어 강돌을 이용한 이른바 석심토루를 구축하였는데, 이는 성곽 유적에서 아직까지 조사된 예가 없는 특이한 방법이다. 또한 순수 백제 유물만 출토되고 있어 백제에 의해 축조되어 경영된 고대 토성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충주 일대에 분포하는 많은 제철유적과 관련하여 제철 관련 공방시설을 찾은 점도 주목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