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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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齊賢肖像 |
영어의미역 | Portrait of Yi Jehyeon |
이칭/별칭 | 「익재 이제현 영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47-5[중앙탑길 112-2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길경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0년 11월 13일 - 이제현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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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제현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유물|영정 |
제작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소장처 | 충주박물관 |
소장처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47-5[중앙탑길 112-28] |
소유자 | 경주이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익재 이제현의 초상화.
[개설]
이제현은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하였다. 백이정의 문하로서 정주학(程朱學)을 수학하여 탁출한 품성으로 일찍이 중직으로 누진하였다. 때마침 연경(燕京)에 있었던 충선왕(忠宣王)이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이제현을 불러들이자 연경에 가서 원(元)의 학자 요수염(姚燧閻), 조맹부 등과 함께 고전(古典)을 연구하여 학명을 날렸다. 1319년(충숙왕 6)에 충선왕을 수행하여 중국 강남 지방을 역유(歷遊)하기도 하였다.
이후 복잡한 원조와의 관계에서 충숙왕, 충목왕의 수난을 탁월한 외교 절충으로 타개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1356년(공민왕 5)에는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만년에는 왕명으로 실록을 편찬하였고, 『익재난고(益齋亂藁)』, 『익재집(益齋集)』, 『역옹패설』 등 많은 문장을 남긴 문신일 뿐만 아니라 그 학문은 원(元)에도 크게 알려졌으며, 조맹부의 서체도 우리나라에 도입하였다.
[형태 및 구성]
이제현 초상은 가로 96㎝, 세로 165㎝로, 의자에 앉은 모습을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그림 위쪽에는 원나라 문장가인 탕병룡이 쓴 찬(贊)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의 영정을 33년 만에 다시 보고 감회를 적은 익재의 글이 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 데 비해 왼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비단 테를 두른 흰 베로 짠 옷을 걸치고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마주 잡고 있다.
왼편 뒤쪽에는 몇 권의 책이 놓인 탁자가 있고, 오른편 앞쪽으로는 의자의 손잡이가 있어 앉은 모습이 안정되어 보이며, 화면 구성도 짜임새 있다. 채색은 색을 칠한 다음 얼굴과 옷의 윤곽을 선으로 다시 그렸는데 부분적으로 표현을 달리하여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 보인다. 그림의 색감은 오랜 세월이 지나 변색된 듯하나 차분한 느낌을 준다.
[특징]
이제현 초상은 1319년 이제현이 왕과 함께 원나라에 갔을 때 당시 최고의 화가인 진감여가 그린 그림의 모사본이다. 원본인 「이제현 초상」(국보 제 110호, 현 국립중앙박문관 소장)을 조선 중기에 모사한 것으로,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 경주이씨 익제공파 종중의 사당에 모셔져 있던 것이다. 이제현 초상은 전신을 그린 것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얼굴과 의복을 선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시대 다른 초상화들과 비슷하며, 조선시대 초상화들의 경우 인물이 오른쪽을 향하고, 배경이 되는 바탕에 아무런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은 것에 비해 빈틈없는 구성과 왼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고려 초상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원나라 화가가 그린 것이지만 원본은 구도가 안정되고 인물 묘사가 뛰어난 우수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현 초상도 원본과 동일한 모사본으로, 현재 동일한 양식의 이제현 초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경주이씨 문중 사당에 모시던 이제현 초상은 한때 도난을 당하였다가 다시 찾은 후 현재는 충주박물관에 보관, 기탁되어 전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익재 이제현 영정」의 원본은 여대(麗代)의 희소한 유품인 동시에, 원(元)의 화백에 의하여 그려져 원(元)의 화풍을 전하고 있다. 또 그 찬기(贊記)가 있어 유래를 확실히 전하고 있고, 화기까지 똑같이 모사하여 가치가 더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 11월 13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