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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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舜孝 |
영어음역 | Son Sunhyo |
이칭/별칭 | 경보(敬甫),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40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세영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증조할아버지는 손영(孫永)이며, 할아버지는 손유례(孫有禮)이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손밀(孫密)이며, 어머니는 정선군수를 지낸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신자의(申子儀)의 딸 사이에서 아들 손주(孫澍)가 있다.
[활동사항]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457년(세조 3) 사헌부감찰 재직 중 문과중시(승진시험)에 급제하여 경창부승에 임명되고 이후 병조좌랑, 형조정랑, 사헌부집의, 사헌부전한 등을 지냈다. 1471년(성종 2) ‘시무17조’를 올려 채택되고 형조참의에 특진되었으나 직무상 과오로 상호군으로 전임되었다.
그 뒤 장례원판결사가 되어 소송 문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였으며, 1475년(성종 6) 부제학을 거쳐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승지, 도승지, 강원감사를 역임한 후 호조참판, 형조참판을 지내면서 연산군의 생모 왕비 윤씨의 폐위를 반대하기도 했다.
1480년 지중추부사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공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대사헌,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485년 임사홍(任士洪)을 두둔하다가 성종의 비위를 거슬러 경상감사로 좌천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우찬성을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르렀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학문과 사상]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중용(中庸)』, 『대학(大學)』, 『역경(易經)』 등에 정통했다. 또한 문장에 뛰어났고 대나무 그림에도 능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487년 『식료찬요(食療撰要)』를 저술했다. 문집으로 『물재집(勿齋集)』이 있는데 1726년(영조 2) 이세환(李世煥)의 발문이 붙어 간행된 것과 1876년(고종 13) 이돈우(李敦禹)와 손석래(孫錫來)의 발문과 허전(許傳)의 서(序)가 붙어 간행된 것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404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손순효 신도비가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404번지에 있다. 1523년(중종 18) 손순효의 제자 이창신(李昌臣)이 손순효 신도비의 비문을 지었고, 이찬(李澯)이 글자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