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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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夢鼎 |
영어음역 | Yu Mongjeong |
이칭/별칭 | 경임(景任),학암(鶴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유관(柳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유용량(柳用良)이고, 어머니는 안동인 권련의 딸이다.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현감이 되었다. 1574년(선조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있을 때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1587년(선조 20) 성주목사로 재직 중 풍속의 문란을 방지하지 못하고, 죄수가 옥문을 부수고 도망한 책임을 지고 또다시 파직되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 성절사로 명나라에 들어가 조선의 위급한 사항을 보고하고 구원병을 청하여 원병을 끌어오는 데 공을 세우고 같은 해 9월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병조참의, 승정원승지,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이듬해 승정원우승지, 우부승지가 되었으나 그 해 9월 병으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산89번지에 있으며, 묘역은 50평 정도이다. 대리석 상석 측면 둘레에 묘명을 각자하였으나 마멸이 심하다.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조씩 있다. 묘소의 동남쪽 마을 입구에 김유(金揉)가 지은 비갈(碑碣)이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유몽정의 이름도 거론되었으나 조정의 의논이 달라 책봉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때에 아들 유영이 상소하여 공신으로 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예전의 논의를 번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좌찬성에 증직되어 그 명예만 갖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