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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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熊 |
영어음역 | Jo Ung |
이칭/별칭 | 백기장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길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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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
성별 | 남 |
생년 | 1567년~1572년 |
몰년 | 1592년 8월 4일 |
본관 | 한양 |
대표관직 | 선전관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기(白旗). 개국공신 조인옥(趙仁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조일(趙逸)이다.
[활동사항]
충주 출신의 조웅은 1591년(선조 24) 조헌(趙憲)의 천거로 선전관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강(趙綱)을 따라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나누어 의병을 이끌고 한성으로 가는 길목인 충주 앙성면 태자우(현 능암리 대평촌)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맞아 격전을 벌여 물리쳤다.
이 사실을 충청도체찰사가 행재소의 임금에게 알려 충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임하지 않았다. 조웅은 깃발을 모두 흰 것으로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백기장군이라고 하였다. 또한 8도의 의병 중에 “호서 백기장군과 영남의 홍의장군(곽재우)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용맹하였다. 1592년 8월 왜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후 전열을 가다듬고 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 적에게 포위되어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히게 되었다. 왜군이 항복을 권했으나 저항하다가 1592년 8월 4일 사지가 찢겨지는 고통을 겪으며 순절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르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1618년(광해군 11)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1690년(숙종 16) 정려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