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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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龍寺址 |
영어의미역 | Cheongnyong Templ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산 32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장준식 |
성격 | 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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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산 32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청룡사의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관련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현 사지에는 국보 제197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과 보물 제658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그리고 보물 제656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石燈)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로 지정된 충주 청룡사 위전비(靑龍寺位田碑)와 3기의 석종형 부도 등이 있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사찰의 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변천]
보각국사 환암 혼수(幻庵混修)[1320~1392]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고승으로서 태고 보우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이 같은 고승이 활동하였던 청룡사는 조선 전기에 그 위상이 상당히 높았던 사찰로 보인다. 한편 1692년(숙종 18)에 세워진 ‘충주 청룡사 위전비’는 사찰의 경영을 위하여 신도들이 출원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사찰과 관련된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인조 때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호서승람(湖西勝覽)』에 그 이름이 전하고, 『여지도서(輿地圖書)』「충원현조」에는 현의 북쪽 5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 간행된 각종 읍지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고, 자세한 연혁과 내용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현황]
현재의 청룡사는 1921년에 신축되었다. 본래 있었던 청룡사지의 북쪽 청계산 중턱에 위치하였는데, 이곳은 원래 보조국사가 은거하였던 곳이라 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룡사는 조선 전기의 불교계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사찰이다. 환암 혼수 이후 구곡(龜谷) 각운(覺雲), 벽계(碧溪) 정심(淨心), 벽송(碧松) 지엄(智嚴), 부용(芙蓉) 영관(靈觀), 청허(淸虛) 휴정(休靜)으로 전해지는 조계종의 법통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다. 또한 청룡사지 내에 전하는 각종 석조 유물은 불교 미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은 조선시대의 석조 부도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 될 만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