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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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祠堂 |
영어의미역 | Shri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길경택 |
[정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
[개설]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집을 사당(祠堂)이라고 하는데, 사당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도 사용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새로 지으며 격을 높여보려 한 예도 있고,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우는 특별히 영당(影堂)이라고도 하였다. 민간의 사당을 가묘(家廟)라고도 하는데, 왕실의 것은 특별히 종묘(宗廟)라 한다.
충주 지역에 있는 사당은 대부분 사대부 문중에서 마련한 것이다. 서원의 기능을 하다가 훼철되어 특정한 사람을 모시는 사당이 된 예도 있고, 향교에서 특별히 마련한 사당도 있다. 이 사당들은 모두 유교적 전통에 따라 예가 행해지고 있는데 지방이나 문중에 따라 전례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문중 관련 사당]
양정공 사우는 충주시 금릉동 507번지에 위치하며 안동권씨 종중에서 만휴당 권언의 위패를 배향하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한남군 사우는 충주시 용관동에 위치하며 전주이씨 문중에서 혜빈양씨와 금성대군 이유, 세종의 12남인 혜빈양씨의 아들 한남군 이어의 위패를 합사하여 봉안하고 있다.
숭묘각은 충주시 단월동에 위치하며 평택임씨의 중시조인 동헌 임세춘, 아들인 정헌 임재, 손자인 모헌 임태순 3대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는 사당으로 삼헌각(三軒閣)이라고도 한다. 충훈사는 경주이씨 종중에서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충주 이수일 묘소 앞에 1979년 중건한 사당으로 충무공 이수일 장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인곡사는 청주한씨 종중에서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건립한 사당으로 회헌 한여해의 위패를 배향하여 향사하고 있다. 충주 영모사는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위치하는 사당으로 충주최씨 종중에서 충주최씨 시조 최폐 등 선조 8위의 위패를 배향하여 향사하고 있다.
임경업장군 사우는 충주시 살미면 세성동에 위치한 평택임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668년에 창건되고 1984년에 중건된 사당으로 임경업의 영정을 배향, 향사하고 있다. 무릉사는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위치한 충주 최응성 고가 우측에 있는 사당으로 수암 권상하와 함월 최응성을 향사하고 있다. 1874년에 건립되어 1983년에 충주댐 수몰 지역인 무릉리에서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허간 사우는 양천허씨 종중에서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마련한 사우로, 부사 허간과 그의 아들 묵재 허적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하여 향사하고 있는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향의 사당을 위치시키고 그 좌측으로 영정각을 배치하고 있다.
충주 박팽년 사당은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94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순천박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세종 때 집현전 학자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1775년(영조 51)에 창건되고 1968년에 중수된 건물로 사당 건물 정면에는 1977년에 복원한 솟을삼문의 충신문이 있는데 중앙에 박팽년, 우측 칸에 박일산(朴一珊), 좌측 칸에 박순(朴珣)의 충신지문 편액이 있다. 이승소 사우는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위치하고 있다. 1904년에 건립하여 1934년에 중건된 건물로, 양성이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원이 축소된 사당]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는 임경업을 기리는 사당으로 충주시 단월동에 위치한다. 그러나 충렬서원으로서의 기능을 겸하다가 임경업만을 모시는 것으로 한정된 경우이다. 장암사당은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위치한 사당으로, 장암 정호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어 장암영당이라고도 한다. 장암사당은 사액 서원이었던 누암서원(樓巖書院)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며 새롭게 장암 정호만을 모신 사당으로 크게 축소된 것이다.
하강단소는 충주시 금가면 하담리에 위치하는데, 모당 홍이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옆에 하강서원이라 하여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을 지었는데, 훼철되었던 서원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향교 관련 사당]
호성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충주향교의 위패를 구한 석천수와 석감을 기리기 위해 충주 유림에서 지은 사당이다. 호성사는 향교의 서쪽에 외곽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특징]
충주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당은 위의 3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그중 향교와 관련된 호성사와 같은 사당이 존재하는 것이 주목된다. 인물이 뛰어나면 문중에서 부조묘로 향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종손 집에 사당을 지어 4대를 향사하는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려웠다.
충주 지역에 있는 사당의 수도 20개 안팎으로 지역세에 비하여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이는 불교의 사찰 중 전통 사찰 수가 크게 적다는 것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즉 충주 지역은 크고 작은 전란이 잦은 곳이고, 전란이 있을 때마다 통로가 되었기 때문에 전통 사찰이나 문중의 사당이 변변히 보존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도 여럿이고 크고 작은 문파가 많았던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당·부조묘 등이 드문 것은, 충주 지역의 수난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고려시대 몽고와의 전란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직접 겪은 곳이고, 한말 의병전쟁 때는 초토화가 시도되기도 하였고, 6·25전쟁을 통해 커다란 혼란을 겪었던 지역이다. 이러한 수난사야말로 오래된 사찰이나 사당의 훼손을 촉진하였고 전통적 고건축물도 남겨놓지 못한 배경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