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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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常服 |
영어의미역 | Ordinary Dres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집필자 | 김경옥 |
[정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일상 생활에서 입는 옷.
[연원]
우리나라 평상복은 민족적·지리적으로 동북에 숙신족, 서북쪽에 선비족과 돌궐족, 서쪽에 한족 등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북방 기마 민족의 옷에 영향을 받아 추위와 유목 생활에 알맞은 소매와 바지폭이 좁고, 저고리와 바지 분리형 양식이 자리 잡았다. 때로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 큰 변화를 가져온 적도 있지만 저고리, 바지, 치마, 두루마기로 대표되는 서민의 기본 평상복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삼국시대에는 직물이 크게 발달하여 주(紬)·능(綾, 비단)·사(紗)·라(羅) 등의 견직물을 비롯하여 모직물·면직물 등이 생산되었다. 또한 국가 체제의 확립과 더불어 계층화된 신분제도로 귀족복과 서민복으로 구분되었고, 귀족의 복식은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호화로운 형태로 변모해 갔으나 서민들은 큰 변화 없이 고유 평상복 기본 형태에서 색깔 등 세부적인 부분만이 변화되었다.
고려시대는 1231년(고종 18) 이후 원나라의 머리 모양과 복식을 따르던 기간이 100년이나 지속되었고 공민왕이 명나라 태조에게서 왕비와 신하의 면복을 받은 뒤 복제가 명나라와 같아진 때도 있었지만, 서민들은 삼국시대 기본 복식인 치마저고리를 계속 입었다. 치마저고리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후기에 생긴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모양과 옷감이 달랐다. 양반들은 비단이나 모시같이 비교적 좋은 옷감을 사용하였지만, 서민들은 무명이나 베로 만든 대개 흰색의 옷을 입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남자들은 예전과 별 차이 없었으나, 여자들은 풍성하고 다리 끝을 좁게 매어 고무줄을 넣은 ‘몸빼’ 바지를 많이 입었다. 6·25전쟁 때에는 구호물자 옷을 줄이거나 뜯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고 군복은 검은 물감을 들여 입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서양의 문물이 급격하게 들어오면서 충주 지역도 양복점, 양장점이 많이 생겨 양복 등의 일상복을 즐겨 입게 되었다.
충주 지역 평상복은 우리나라 전역의 의복 변화와 큰 차이가 없다. 충주 지역이 우리나라 역사 이래 지방의 중심지 구실을 해왔고, 경기도·전라도·경상도·강원도의 의복 관습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형태]
예전에는 남자는 적삼,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 차림이 보통이었으나 요즘은 양복 상·하의, 셔츠, 점퍼로 바뀌었다. 여자의 경우 속옷, 저고리, 치마, 두루마기에서 원피스, 투피스 등으로 바뀌었다. 여름철에는 간편한 바지, 티셔츠, 운동화, 샌들을 신기도 하며, 등산복이나 운동복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어린이는 바지, 저고리, 치마에서 양복식 평상복과 캐주얼 차림으로 바뀌었다.
[용도]
회사나 각 직장에서 입는 옷과 농사일 등 작업장에서 입는 작업복, 여행, 운동이나 나들이 때 입는 간편한 옷으로 입기도 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추석 명절에 어른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어린이들은 색동한복을 입고 다니기도 한다. 행사 때나 체육대회 때는 일반적으로 간단한 차림새나 단체복을 입는다. 단오·초파일 등에 노인들은 대개 하얀 옷에 모자,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나들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