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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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鵠寺 |
영어의미역 | Yeonggoksa Chinese Poe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서동형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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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정지상(鄭知常)[?~1135] |
[정의]
고려 전기 문신 정지상이 충주에 있던 영곡사의 절경을 읊은 한시.
[개설]
정지상(鄭知常)[?~1135]은 서경 출생으로 호는 남호(南湖), 초명은 정지원(鄭之元)이다.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대적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정시상은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지상의 시재(詩才)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을(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야사로 전할 만큼 뛰어났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송인(送人)」이 있다.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영곡사(靈鵠寺)는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던 고찰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정지상이 지은 한시 「영곡사」는 절의 창건이 고려시대 이전이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구성]
「영곡사」는 산(山)·간(間)으로 압운된 평기식(平起式) 칠언절구이다. 기구와 승구에서 영곡사는 그 아래로 흐르는 단월강(丹月江)과 어울려 빼어난 전망을 갖추고 있는 서경(敍景)을, 전구에서 삼초대를 북두칠성의 최고점으로 비유하였고, 결구에서 영곡사를 더욱 높은 불심의 경지로 숭모하는 서정을 노래한 시로서 정지상 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내용]
천인암두천고사(千仞巖頭千古寺) : 아스라한 벼랑바위의 창연한 옛 절은
전임강수후의산(前臨江水後依山) : 앞으로 강에 임해 있고 뒤로는 산에 의지해 있네
상마성두옥삼각(上磨星斗屋三角) : 위로는 북두칠성 매만질 듯 삼각마루 솟았는데
반출허공루일간(半出虛空樓一間) : 누대 한 칸 반쯤은 허공에 솟아 있구나
[의의와 평가]
정지상의 시풍은 만당(晩唐: 중국 당시의 4기 중 마지막 시기인 836~940년 사이)의 풍으로 절구에 뛰어나며 어운(語韻)이 청화(淸華)하고 구격(句格)이 호일(豪逸)한 것으로 일컬어진다. 정지상의 시는 한마디로 유려(流麗)와 완려(婉麗)한 것으로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