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98
한자 大邱 慶尙監營 宣化堂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601년연표보기 -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07년 -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새로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6년 -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대구이사청 임시 청사로 사용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0년 -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경상북도청으로 사용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2년 3월 4일연표보기 - 대구 선화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2월 27일연표보기 - 대구 선화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지정 해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2월 27일연표보기 -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보물 지정
현 소재지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성격 관아 건물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

[개설]

선화당(宣化堂)은 조선시대 각 도에 설치되어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감영(監營)의 중심 건물이다. 선화당은 ‘임금의 덕을 베풂으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임을 뜻한다. 현존하는 선화당은 대구의 경상감영 선화당을 비롯하여 강원도 원주시의 강원감영 선화당, 충청남도 공주시의 충청감영 선화당 등이 있다.

[설립 목적]

경상감영 선화당은 경상도관찰사가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경상감영 내에서도 가장 중심에 놓여 있었다. 경상감영은 지금의 경상남북도를 관할하던 조선시대 지방관청이었고 오늘날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변천]

경상감영 선화당은 원래 경상북도 안동에 있던 것을 경상감영이 달성에서 대구로 이전되면서 1601년(선조 34) 김신원이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 그 뒤 1670년(현종 11), 1730년(영조 6), 1806년(순조 6년) 세 차례에 걸친 화재로 타 버렸다. 지금의 선화당 건물은 1807년(순조 7)에 윤광안이 다시 지은 것이다. 1874년(고종 11)에 경상감영의 관아 시설 전반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1906년 통감부의 요청에 경상북도관찰사 서리 박중양이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대구이사청의 임시 청사로 사용되며 조선시대 경상도의 상징 공간인 선화당이 일제 침략 세력의 공무 공간으로 활용되는 치욕을 겪었다.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1910년부터 경상북도청으로 사용되었다. 1966년 경상북도청북구 산격동으로 이전하였다. 선화당이 있는 경상감영은 도심 녹지공간 확보 및 경상감영을 보존하기 위하여 1970년 중앙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97년 중앙공원에서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재정비하였다.

[현황]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고 공포는 주심포(柱心包) 양식과 익공식(翼工式)을 절충한 이고주칠량(二高柱七梁)의 겹처마 집이다. 선화당은 1982년 3월 4일 ‘대구 선화당’이라는 명칭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2021년 12월 27일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大邱慶尙監營宣化堂)’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여 조선시대 감영을 이해하는 데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현존하는 관아 건축물이 많지 않아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경상감영의 상징이 되는 건물이라는 데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