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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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新梅洞 時至地區 生活遺跡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591|신매동 592|신매동 593|신매동 589|신매동 588|신매동 587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병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11월 24일~1996년 5월 29일 -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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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591|592|593|589|588|587 |
성격 | 생활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삼국시대·조선시대 생활유적.
[개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은 시지 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는 Ⅰ·Ⅱ·Ⅲ지구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은 Ⅰ·Ⅱ지구에 해당된다. Ⅰ·Ⅱ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수혈유구, 삼국시대 고상건물지·수혈유구·기둥 구멍·우물·제철 관련 노(爐), 조선시대 수혈유구·기둥 구멍·우물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고, 적색 연질 항아리[赤色軟質壺]·굽다리접시[高杯]·토관(土管) 조각·말 모양 흙인형[馬形土偶]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이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은 성암산[472m], 안산[470m] 사이 골짜기를 침식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중앙과 끝부분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지역 유적’으로도 불리고 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도 대구 고산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유적의 위치는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이며, 주변에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다수 조사되었다. 동쪽 욱수천 건너편 낮은 구릉에는 삼국시대 중산동 고분군과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토기 요지가 있다.
[형태]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2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6그리드 집자리는 중앙에 돌을 두른 화덕 자리[圍石式爐址]가 설치되어 있다. 수혈유구는 5기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3기의 수혈에는 내부에 깬돌[割石]이 가득 채워져 있다. 유물은 대부분 아가리 부분과 바닥 부분이 조각으로 확인되었는데, 수혈에서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가 확인되었고, 석기는 반달돌칼[半月形石刀]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수혈유구는 94기가 확인되었데, 아궁이 시설을 갖추거나 바닥면이 단단하게 처리되어 있거나 평면 형태가 정형성을 갖춘 수혈 등은 집자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 대부분 부정형 수혈유구는 점토 채취장, 폐기장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은 14기가 조사되었는데, 상부가 넓고 바닥이 좁은 형·상부와 바닥 너비가 일정한 통형(筒形)·상부가 좁고 바닥이 넓은 형태로 나뉜다. 우물 바닥에 형성된 뻘층 내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와 더불어 복숭아씨, 살구씨, 솔방울, 두레박 등의 유기물도 함께 확인되었다. 쇠찌꺼기가 많이 출토되는 화덕 유구[爐遺構]가 2기 확인되었는데, 제철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기둥 구멍은 수천 개가 확인되었으나 배치가 정연하여 고상건물지로 파악된 것은 2기에 불과한데, 1×1칸, 2×2칸으로 확인되었다. 수혈유구와 우물에서는 굽다리접시[高杯]·짧은목항아리·긴목항아리[長頸壺]·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겹입술 굽다리긴목항아리[附加口緣臺附長頸壺]·그릇받침[器臺]·굽접시[臺附碗]·손잡이잔[把手附杯]·뚜껑[蓋]·접시[杯]·바리[鉢]·손잡이단지[把手附壺]·손잡이바리[把手附鉢]·세다리토기[三足土器]·시루[甑] 등의 토기류와 쇠화살촉[鐵鏃]·쇠못[鐵釘]·쇠도끼[鐵斧]·쇠방울[鐵鐸]·쇠손칼[鐵刀子]·쇠낫[鐵鎌]·쇠고리[鐵環]·쇠끌[鐵鑿]·문고리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은 발굴 조사 완료 후 택지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 원형을 찾을 수 없다. 주변 충적지 대부분도 택지 개발 후 아파트, 단독 주택, 근린 생활 시설, 도로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동쪽 신매공원 부분과 욱수초등학교 운동장 부지는 원형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은 조사 당시 국내에서 찾아보기 드문 대규모 삼국시대 생활유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다양한 유구들이 복합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마을 유적이다. 대규모 생활 유적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집자리의 수가 적은 점에 대하여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고산선상지 중앙과 끝부분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분포하고 주변 구릉지에 중산동 고분군, 대구 노변동 고분군,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토기 요지가 분포하고 있는 시지지구 마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