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38
한자 大邱 新梅洞 時至地區 生活遺跡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3|신매동 605|신매동 606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11월 24일~1996년 5월 29일 -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3|605|606지도보기
성격 생활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

[개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시지 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는 Ⅰ·Ⅱ·Ⅲ지구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는 Ⅲ지구에 해당된다. Ⅲ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삼국시대 집자리·수혈유구·우물·도랑유구[溝狀遺構], 소규모 웅덩이 같은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고, 민무늬토기[無文土器], 갈판[碾石], 갈봉[磨石] 등의 청동기시대 유물과 굽다리접시[高杯], 뚜껑[蓋], 송풍관편, 흙구슬[土球] 등과 같은 삼국시대 연질토기(軟質土器)·도질토기(陶質土器) 조각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가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성암산[472m], 안산[470m]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중앙과 끝부분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지역 유적’으로도 불리고 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도 대구 고산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유적의 위치는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이며, 주변에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다수 조사되었다. 동쪽 욱수천 건너편 낮은 구릉에는 삼국시대 중산동 고분군과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토기 요지가 있다.

[형태]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1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는 방형을 띤다. 내부 시설로는 ‘ㄷ’자 형태의 벽도랑[壁溝]과 화덕자리[爐址]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민무늬토기 바닥 조각과 골아가리토기[口脣刻目土器] 조각, 갈판과 갈봉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집자리는 3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말각장방형 내지 말각방형으로 추정된다. 집자리 가장자리에 소토화(燒土化)된 벽체가 설치되어 있고,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된다. 수혈유구는 46기가 조사되었다. 바닥면이 편평하게 다져져 있거나 부뚜막시설이 설치되어 있거나 기둥 구멍의 배치가 정연한 수혈은 주거용, 부정형의 수혈은 작업 공간이나 폐기장 등의 용도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은 2기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이고, 상부가 넓고 바닥이 좁은 형태이다. 고상건물지는 9기가 확인되었는데, 서쪽에 치우쳐 주로 2×2칸, 2×3칸의 구조로 확인되었다. 곡물을 저장하거나 공방과 관계되는 창고 시설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유구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굽다리접시·짧은목항아리[短頸壺]·작은 단지[小壺]·긴목항아리[長頸壺]·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사발[碗]·굽다리 사발[臺附碗]·손잡이 달린 굽다리 사발[把手臺附碗]·손잡이잔[把手附杯]·뚜껑[蓋]·접시[杯]·바리[鉢]·시루[甑]·작은 바리[小形鉢]·작은 병[小形甁] 등의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와 흙구슬[土球]·가락바퀴[紡錘車]·그물추[漁網錘]·송풍관[(送風管)·내박자(內拍子) 등의 토제품, 쇠화살촉[鐵鏃]·쇠못[鐵釘]·꺾쇠·쇠도끼[鐵斧]·쇠손칼[鐵刀子]·쇠낫[鐵鎌]·쇠고리[鐵環]·가위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는 발굴 조사 완료 후 택지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 원형을 찾을 수 없다. 주변 충적지 대부분도 택지 개발 후 아파트, 단독 주택, 근린 생활 시설, 도로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동쪽 신매공원 부분과 욱수초등학교 운동장 부지는 원형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는 조사 당시 국내에서 찾아보기 드문 대규모 삼국시대 생활유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발굴 조사 과정에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국토 개발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논리가 전개되면서 유적의 훼손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시지지구 생활유적은 다양한 유구들이 복합적인 분포상을 보여 주는 마을 유적이다. 인접하여 있는 대구 노변동 고분군, 중산동 고분군,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토기 요지 등과 함께 고려하면, 생활 공간·생산 공간·매장 공간으로 나누어진 5~6세기 시지지구 마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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