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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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再謙 |
영어공식명칭 | Seo Jaekyum |
이칭/별칭 | 화익(和益),죽계(竹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557년 - 서재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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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서재겸 의병 봉기 |
몰년 시기/일시 | 1617년 - 서재겸 사망 |
출생지 | 조야동 -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 |
거주|이주지 | 조야동 -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 |
수학지 | 선사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
묘소|단소 | 서재겸 묘소 -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 |
성격 | 학자|의병 |
성별 | 남성 |
본관 | 달성(達城)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가계]
서재겸(徐再謙)[1557~1617]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익(和益), 호는 죽계(竹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 서진손(徐震孫)이고, 할아버지는 서미수(徐眉壽)이다. 아버지는 습독(習讀)을 지낸 서진(徐津)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이다. 형은 서득겸(徐得謙)이고, 아들은 서유원(徐惟遠)이다.
[활동 사항]
서재겸은 1557년(명종 12)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서 태어나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서득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6월 16일에 낙동강 아금암(牙琴巖)에서 벌어진 왜군과의 전투에서 서득겸이 전사하였다. 1594년 1월 16일에는 의병 200여 명을 거느리고 팔공산으로 가서 산성을 수축하였다.
서재겸은 1596년 3월 팔공산 1차 회맹에 참여하였으며, 9월에는 2차 회맹에도 참여하였다. 서재겸은 2차 회맹 때 회맹시(會盟詩)를 지었는데 많은 의병장이 차운시(次韻詩)를 지었다.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에는 서사원의 선사재(仙査齋)에서 학문에 매진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서재겸의 저술로는 『죽계일고(竹溪逸稿)』가 있다.
[묘소]
서재겸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 있다. 묘갈명은 1655년 예조정랑 서변(徐忭)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