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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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 |
영어공식명칭 | Filial s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 지역에서 부모를 극진하게 섬긴 사람
[개설]
대구 지역 효자에 대한 기록은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하광신(夏光臣)과 조희삼(曺希參)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 명종(明宗)[재위 1171~1197] 때 사람인 하광신은 1327년(충숙왕 14)에 복호(復戶)와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비석이 세워졌다. 하광신의 효자 정려는 현재 경상도 지역에 남아 있는 정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희삼은 1384년(우왕 9)에 정표(旌表)를 받고 비석이 세워졌다. 1469년(예종 1)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고려시대 효자인 김한(金閑)과 채순(蔡順), 조선시대 효자인 박득춘(朴得春)이 추가되어 있다. 이들 다섯 사람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1768년(영조 44)에 편찬된 『대구읍지(大丘邑志)』에는 서시립(徐時立), 서달숭(徐達崇), 박몽징(朴夢徵), 곽정응(郭井應), 전창항(全昌恒)·전창익(全昌益)·전창정(全昌鼎) 형제, 곽기운(郭起雲), 이칠선(李七先), 강담사리(姜淡沙里), 김남백(金南伯), 김철일(金哲鎰), 하자음동(河者音同)이 효자로 기록되어 있다. 1832년(순조 32)에 편찬된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에는 서렴(徐濂), 서명보(徐命普), 박진인(朴振仁), 강순항(姜順恒)이 추가되었다.
2007년에 간행된 『대구향교지』에도 김규환(金圭煥), 김여삼(金汝三), 도정우(都廷佑), 도전호(都顓浩), 서응윤(徐應玧), 손석태(孫碩泰), 허영(許泳), 하정익(夏正益), 하구락(夏龜洛) 등이 추가되었다.
대구 지역의 효자들의 행적으로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극진히 봉양하거나 부모가 사망한 뒤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경우가 가장 많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부모에게 피를 먹여 생명을 연장하게 하였다는 일화 역시 많다. 효자 중 양반인 경우에는 자(字)와 호(號), 본관(本貫)이 대부분 밝혀져 있다. 여러 문헌에 기록된 효자 중에는 정려를 받은 경우도 있고, 효행으로 천거를 받아 벼슬을 하거나 사망한 뒤에 증직되었다. 또한 부역이나 세금을 면제받거나 사당에 배향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려는 예조와 의정부의 심사를 거쳐 국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표창이라 양반가에서는 가문의 영예로 여겼으며, 노비와 천민의 경우에는 면천(免賤)하게 하여 신분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등 실생활에 이익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