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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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相振 |
영어공식명칭 | Song Sang J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원 |
출생 시기/일시 | 1928년 10월 30일 - 송상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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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6년 2월 - 송상진 대구사범학교 수료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송상진 대구 덕화중학교 교사 부임 |
수학 시기/일시 | 1958년 - 송상진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 송상진 대구교원노조 활동 및 민주민족청년동맹 경상북도연맹 사무국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8월 - 송상진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 관련하여 중앙정보부 조사 후 무혐의 석방 |
활동 시기/일시 | 1975년 4월 8일 - 송상진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
몰년 시기/일시 | 1975년 4월 9일 - 송상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4년 4월 9일 - 민청학련사건 20주면 기념식 및 인혁당 추모제 개최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4월 8일 - 인혁당 희생자 30주기 추모제 개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1월 23일 - 송상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5년 11월 - 송상진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 |
출생지 | 백악리 -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학교|수학지 |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
학교|수학지 | 대구대학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묘소 | 현대공원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낙산로3길 34-22[낙산리 산152] |
성격 | 사회운동가|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희생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창녕(昌寧) |
대표 경력 | 민주민족청년동맹 경상북도연맹 사무국장 |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이자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희생자.
[개설]
송상진(宋相振)[1928~1975]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하여 1974년에 조작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가계]
송상진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아버지는 송길용이다. 부인은 김진생이다.
[활동 사항]
송상진은 1928년 10월 30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백악리[현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에서 태어났다. 1946년 4월 대구사범학교 강습과 1년을 수료하고 대구 공산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경제과에 입학하였다. 1957년 5월부터 대구 덕화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1958년 5월 대구대학을 졸업하였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뒤에는 대구교원노조에서 활동하였으며, 하재완(河在玩)·서도원(徐道源)·도예종(都禮鍾) 등과 함께 민주민족청년동맹 경상북도연맹을 조직하고 사무국장을 맡아 한미 경제협정 반대, 일본 경제인 입국 반대,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964년 7월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으로 연행되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유신 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4년 4월 3일 「대통령 긴급조치 4호」를 공포한 후 고문과 강압수사 끝에 유신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배후 조직으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을 조작하였다. 송상진은 핵심 관련자의 한 사람으로 구속되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우홍선(禹洪善)·김용원(金鏞元)·이수병(李銖秉)·여정남(呂正男)·하재완·서도원·도예종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았고, 다음 날인 4월 9일에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저술 및 작품]
송상진은 1961년 1월 20일 『영남일보』에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폭로한다」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묘소]
송상진의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낙산로3길 34-22[낙산리 산152] 현대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재심 공판에서 송상진을 비롯한 희생자 8인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2015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인민혁명당사건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1994년 4월 9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민청학련사건 20주년 기념식 및 인혁당 추모제가 거행되었으며, 2005년 4월 8일 명동성당에서 인혁당 희생자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2006년 4·9인혁재단이 설립되어 매년 4월 9일을 전후하여 희생자를 기리는 ‘4·9 통일열사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