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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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Woodbridge O. Johnson |
이칭/별칭 | 장인차(張仁車)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정은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의료선교사.
[개설]
우드브리지 존슨(Woodbridge O. Johnson)[1869~1951, 한국 이름은 장인차(張仁車)]은 1969년 미국 일리노이주 게일즈버그에서 태어났다. 1891년에 펜실베이니아주 의과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킹스카운티 병원과 윌키스바레 병원에서 인턴,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1897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부산을 경유하여 대구에 도착하였다. 우드브리지 존슨은 대구 제중원[동산의료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자 및 나환자에게 치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한 대구 의료 선교의 개척자이다.
[활동 사항]
우드브리지 존슨은 1897년 대구에 도착하 이후에 건강문제로 1912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15년간 대구 제중원[동산병원]에서 봉사를 하였다. 우드브리지 존슨이 하였던 의료사업 가운데 중요한 업적들은 나환자 구제, 지역 최초의 제왕절개수술, 천연두 예방접종, 말라리아 환자를 위한 키니네 보급 등이다. 우드브리지 존스은 1909년 최초로 나환자 수용소를 설치하고 10명의 나환자를 수용하였다. 1909년 아내 에디트 파커의 도움으로 대구 지역 최초의 제왕절개술을 실시하였는데 산모와 아기가 모두 건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천연두 예방약을 미국에 대량 주문하여 싼 가격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함으로써 사망률이 50%나 되는 무서운 전염병을 퇴치하게 되었다.
우드브리지 존슨은 1910년 초대병원장으로 사역한 후 1911년 플레처에게 병원장 자리를 인계하였다. 그 후 1912년 미국으로 귀국하여서는 목장을 경영하여 성공하였고, 귀국 후에도 지역의 비행청소년을 보호하는 일들을 하였다. 우드브리지 존슨은 고령이 되어서도 사회와 교화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우드브리지 존슨 선교사가 미국 미주리주에 주문한 사과 묘목을 선교사 사택 정원에 심은 것이 대구 사과의 효시가 되었다. 그 당시에 심은 사과나무의 자손목 한 그루가 현재 동산병원 의료선교박물관 정원에 심어져 있으며, 대구광역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