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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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半月當百貨店 |
영어공식명칭 | Banwoldang Department Stor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94[남산동 927-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광 |
개칭 시기/일시 | 1943년 - 반월당백화점에서 공신백화점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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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반월당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94[남산동 927-9] |
성격 | 백화점 |
면적 | 201.66㎡[건축면적]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었던 백화점.
[개설]
반월당백화점은 1930년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현재 반월당역 22번 출구 인근]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약전골목에서 장사로 큰돈을 모은 차병곤이 조선인 최초로 세운 백화점이다. 건물의 규모는 201.66㎡[건평 61평]의 2층 목조 건물이며, 정확한 설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은 1930년에 현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문을 연 일본의 미쓰코시[三越]백화점이었다. 대구에는 1932년 4층 규모의 이비시야(イビツヤ)백화점이 최초의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고, 1934년 9월엔 대구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5층 규모의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1937년에는 이근무가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에 쇼윈도를 갖춘 5층 콘크리트 건물인 무영당양품점(茂榮堂洋品店)을 열었다.
[변천]
반월당백화점이 위치하고 있던 중구 남산동 일대는 1930년대 당시 수양버들과 아카시아가 우거진 야산으로 사람들의 통행도 드문 한적한 곳이었으나 반월당백화점이 영업을 시작하게 되자 차츰 집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붐비게 되었다. 반월당백화점이 유명하여지자 건물 이름이 동네 이름이 되었다.
반월당백화점에서 취급한 상품은 여학생들의 수예품, 메리야스, 양산 등 잡화류 등이며, 고객도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반월당백화점의 경영은 차병곤의 부인인 최소돌이 맡았으며, 1934년 7월 23일에는 ‘호랑이 자수강습회(刺繡講習會)’가 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자수강습회는 반월당 수예부가 주최하였으며, 동아일보 대구지국이 후원하였다.
1937년 화재로 반월당백화점은 전소되었다가 재건되었지만 이후 잦은 화재와 건물 분리로 인하여 경영난을 겪다 1943년 다른 사람에게 매각되었으며, 상호도 공신백화점으로 변경되었다. 1945년 8·15해방 이후 공신백화점도 문을 닫은 후 업종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1981년 도로 확장 때 완전히 철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