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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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堂洞 - |
영어공식명칭 | Sindang-dong Juldanggigi |
이칭/별칭 | 신당동 줄다리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도희 |
성격 | 민속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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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시기 | 정월대보름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행하는 민속놀이.
[개설]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한 해의 풍흉을 점치고 풍농을 기원하는 공동체 놀이로서 줄다리기를 하며 놀았다. 이를 ‘신당동 줄당기기’라 한다.
[연원]
신당동 줄당기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는데, 1960년대까지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신당동 주민 전체가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줄당기기를 하였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신당동 줄당기기에서 줄을 당길 무리는 마을 중앙에 흐르는 강을 경계로 하여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고, 동편은 수줄을 당기고 서편은 암줄을 당긴다. 놀이에 필요한 줄은 두 패로 나누어진 마을에서 각각 모은 짚을 거두어 정월 초열흘이 되면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까치줄을 만들고, 다음에는 까치줄 여러 가닥을 깔아 놓고 새끼로 엮는다. 엮은 까치줄을 말아서 반으로 접어 틀면 접은 부분이 둥글게 된다. 이 부분을 ‘줄대가리’라 한다. 줄대가리의 아래 부분을 ‘줄목’이라고 하는데, 이 줄목을 까치줄로 동여매어 줄이 풀어지지 않게 한다. 줄목 이하를 ‘원줄’이라고 한다. 원줄에는 동여맨 매듭에 ‘종줄’을 달아 사람들이 매달려 당기기 좋게 만든다. 줄의 끝에도 여러 가닥의 까치줄을 달아 역시 사람들이 매달려 당기도록 장치한다. 줄의 크기는 어른들의 팔로 한 아름 정도이다. ‘수줄대가리’는 ‘암줄대가리’보다 작게 하는데, 그래야만 두 줄을 걸 때 암줄대가리 속에 수줄을 넣어 ‘고대가리’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 방법]
대보름날 아침이 되면 각 편에서 줄을 당기는 장소로 줄을 옮긴다. 줄을 옮길 때는 풍물을 치고 「칭칭이노래」를 하며, 줄머리에는 장수 한 명이 타고 행진을 주도한다. 줄다리기 장소에 줄이 도착하면, 서로 유리한 방식으로 줄을 당기고자 옥신각신한다. 특히 줄을 걸 때, 음담패설을 주고 받으며 상대방을 욕하고 승강이를 한다. 이러한 과정에 드는 시간이 꽤 길어서 신당동 줄당기기는 저녁 때가 되어야 끝이 날 때도 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저녁 내내 술을 마시며 풍물을 치고 논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신당동 줄당기기는 집집마다 짚을 모아서 줄을 만들고 놀이를 치를 때까지 줄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잘 보관하였다. 짚을 모으는 과정에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풍농을 기원하는 정성이 들어간다. 볏짚은 벼농사의 결과물이자 풍농을 보장하는 매개물이다. 이것으로 만든 암줄과 수줄을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인격화하여, 줄머리를 결합시키는 과정이나 줄당기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남녀의 성행위 형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줄은 풍농을 보장하는 신성물이자 자식농사까지 담보하는 실체로 인식되었다. 신당동 줄당기기를 마친 줄은 서당의 땔감으로 제공하였다고 한다.
[현황]
신당동 줄당기기는 1960년대 이후 소멸되었고, 지금도 전승되지 않는다. 다만 신당동에 있는 기관이나 단체, 또는 학교에서 단합이나 체육을 목적으로 하는 줄다리기가 민속놀이로서의 신당동 줄당기기 대신에 행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