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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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泉- 洞祭 |
영어공식명칭 | Yongcheonmaeul Dongje|Religious Ritual for the Village Tutelary Spirit in Yongcheon Village |
이칭/별칭 | 진천동 동제,진천동 당산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481-1|달서구 상화로19길 15-22[진천동 426]|달서구 진천동 809-1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진 |
의례 장소 | 상당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4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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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중당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화로19길 15-22[진천동 426] |
의례 장소 | 하당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809-112 |
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대보름 |
신당/신체 | 성황당|느티나무|회화나무|제단|돌기둥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서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용천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수호신인 동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용천마을 동제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용천마을 동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천마을 동제의 신당은 상당·중당·하당, 이렇게 세 군데이다. 상당은 한 칸짜리 당집 형태의 성황당이다. 상당의 제당 안에는 시멘트로 만든 단이 있고 그 위에 ‘城隍天王大神位(성황천왕대신위)’를 새긴 위패가 놓여 있다. 상당의 당목은 당집 맞은편 아파트 입구에 있는 진천동 느티나무[대구광역시 보호수 7-9]이다. 중당은 진천창의어린이집 바로 앞에 있는 진천동 회화나무[대구광역시 보호수 7-6]인데, 아래쪽에는 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하당은 식당인 취팔선 바로 옆에 있는 당산[제단]과 돌기둥이다. 돌기둥 높이는 약 1m이며 앞쪽에 ‘당상수호神’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절차]
정월 열흗날이 되면 용천마을 동제를 수행하고자 선정한 제관의 제관 집 현관과 제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외부 출입을 자제하고, 금욕하며, 목욕재계하여야 한다.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는데 음주는 허용된다. 과거에는 목욕재계도 대잡이가 지정하여 주는 곳에서 하였으나 요즘은 각자 집에서 하루 두 차례 샤워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정월 열사흗날에 동제의 제수를 장만하는데 주로 서문시장에서 제수 거리를 산다. 정월 열나흗날에는 전날 장만한 재료로 제수를 준비하는데 오후 3시 정도에 준비를 마치고 마련한 제수를 한지로 봉한다. 한지로 봉한 제수는 자정 무렵까지 제관 집에 따로 상을 마련하여 차려 둔다.
제수 준비를 마치면 두루마기와 유건 등을 갖추고 마을을 돌기 시작한다. 마을 돌기는 상당에서 내림굿으로 시작한다. 풍물을 계속 치면서 중당으로 내려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때 술을 약간 마시고 나서 다시 내림굿을 하고 하당으로 향한다. 하당에서도 내림굿을 한 후 다시 상당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이런 방식으로 마을 돌기를 모두 네 차례 진행한다. 마지막 마을 돌기를 마치고 제관 집에서 제수를 상당으로 옮긴다. 정월대보름 자정부터 분향-강신-헌작-독축-소지 순으로 동제를 진행한다. 상당, 중당, 하당에서 제의를 모두 마치면 제관과 풍물재비들이 제관의 집에서 간단하게 음복하고 동제를 마친다.
[축문]
진천동 동제축문(辰泉洞 洞祭祝文)
유세차○○년정월○○삭○○일○○ 유학○○○ 감소고우당산지신 어정유신 숙저명덕 강아가호 풍아가색 명곡지번 제각지식 내위내숭 강복천억 자치상원 정인시식 근이청작포해지천 우신상 향[維歲次○○年正月○○朔○○日○○ 幼學○○○ 敢昭告于堂山之神 於晶維神 夙著冥德 康我家戶 豊我稼穡 冥哭之蕃 蹄角之殖 來爲來崇 降福千億 玆値上元 精禋是殖 謹以淸酌脯醢祗薦 于神尙 響]
[현황]
용천마을 동제는 이전보다 규모는 작아졌으나 과거의 용천마을 주민들이 모인 용천계에서 ‘동제’ 전통을 그대로 이어 가고 있다. 지금도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주민이 모여서 상당, 중당, 하당에 차례로 동제를 지내고 있는데, 제관의 금기 수행이 완화된 것 외에는 오래전부터 지내 오던 방식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