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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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崇謙 |
영어공식명칭 | Shin Sunggyeom |
이칭/별칭 | 신능산(申能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손경희 |
[정의]
후삼국시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일대에서 벌어진 공산전투에서 활약한 명장.
[개설]
신숭겸은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 공산 숲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공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신숭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는 표충단(表忠壇), 충렬비(忠烈碑), 표충재(表忠齋), 고려태사 장절신공영각유허비(高麗太師壯節申公影閣遺墟碑)가 있다.
[가계]
신숭겸은 초명이 신능산(申能山),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평산신씨의 시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곡성현(谷城縣)[지금 전라남도 곡성군] 출신으로 태조(太祖)가 평산에서 사성(賜姓)하였다고 하고, 『고려사』열전(列傳)에는 광해주(光海州)[지금 강원도 춘천시] 사람이라 하였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 인물조(人物條)에 신숭겸의 이름이 실려 있으며, 또한 신숭겸의 묘가 춘천에 있는 것 등으로 보아, 본래 전라남도 곡성군에 태어났으나 강원도 춘천시로 옮겨와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활동 사항]
신숭겸은 몸집이 장대하고 무용(武勇)이 뛰어나 궁예(弓裔) 말년에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해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봉해졌다.
고려 태조 왕건 즉위 후 7, 8년 동안 소강상태였던 후백제와 긴장관계는 견훤(甄萱)이 신라를 공격함으로써 악화되었다. 927년, 견훤은 고울부(高鬱府)[지금 경상북도 영천시]를 습격하고, 신라의 수도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景哀王)을 죽이는 등 경상도 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가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는 크게 분개해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조제(弔祭)하는 동시에 친히 정예부대 5천 명을 거느리고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일대에서 견훤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태조가 위급하게 되었을 때, 신숭겸은 대장(大將)이 되어 원보(元甫) 김락(金樂)과 더불어 힘써 싸우다가 왕건의 목숨을 보전하는 대신 전사하였다.
[묘소]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816-1에 장절공 신숭겸 장군 묘역이 있다.
[상훈과 추모]
고려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해 시호를 장절(壯節)이라 하였다. 또한 아우 신능길(申能吉)과 아들 신보(申甫)를 모두 원윤(元尹)으로 삼고, 대구광역시 동구에 지묘사(智妙寺)를 창건해 신숭겸의 복을 빌게 하였다. 994년(성종 13) 4월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어 태사 개국장절공(太師開國壯節公)으로 태묘(太廟)의 태조 사당에 배향(配享)되었다. 신숭겸의 행적을 기록한 『평산신씨장절공유사(平山申氏壯節公遺事)』에는 1120년 예종이 신숭겸과 김락을 추도하며 지었다는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향가가 전한다.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경북지방 일원에 살고 있는 신숭겸의 후손인 평산신씨 제정공파(齊靖公派), 사간공파(思簡公派), 문희공파(文僖公派) 등이 합동으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