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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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時蕃 |
영어공식명칭 | Ryu Sibeon |
이칭/별칭 | 위중(衞仲),사월당(沙月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인 학자.
[가계]
유시번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위중(衞仲), 호는 사월당(沙月堂)이다. 고려 말 때 삼중대광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연양(柳延陽), 아버지는 유요신(柳堯臣)이며, 어머니는 곡성신씨(谷城申氏)로, 탐(琛)의 딸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색(李穡)의 딸이며, 아들 3명을 두었는데 유종언(柳宗彦)·유종경(柳宗慶)·유종화(柳宗和)이다.
[활동 사항]
유시번은 1569년(선조 2) 4월 4일에 태어났다. 7세 때 경서와 『사기(史記)』를 읽었고, 9세 때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세 때 도에 뜻을 두고 한강(寒岡) 정구(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등과 같은 여러 학자들과 어울리며 덕행과 학업을 닦았다. 특히, 손처눌과 나이를 잊고 벗으로 사귀었다. 한편,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 등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고 학업에 매진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평정된 뒤에 아버지 유요신을 모시고 해서(解西)[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시골집에 돌아와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유시번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 정자와 주자의 저술부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언행록에 이르기까지 성리서적을 탐독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이후로는 벼슬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더욱 학업에 매진하였다. 또 오래도록 원임으로 지내면서 손처눌과 함께 후생들을 교육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만년에 사월호(沙月湖) 근처에 집을 짓고 ‘사월당(沙月堂)’이라 편액을 걸었다. 집 앞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은 뒤에 꽃이 피고 달이 밝을 때면 평복에 유건을 쓰고 연못가를 거닐며 산책했는데, 마치 초연하여 인간 세상에 뜻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1640년(인조 18)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72세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사월당집(沙月堂集)』이 있다.
[묘소]
유시번의 묘소는 대구 해안현 북쪽 비현산(棐峴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靑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