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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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y |
이칭/별칭 | 원시 시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윤정식 |
[정의]
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개설]
선사 시대는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역사 시대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선사 시대의 종말을 문자의 출현을 기준으로 할 때 한반도의 경우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까지 포괄하는 시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인류가 처음 출현한 때부터 문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까지의 기간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다. 달성 지역은 지형상 낙동강을 끼고 있어 대구 지역의 분지와 함께 비교적 넓은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적인 특성 때문에 달성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거주에 용이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달성 전 지역에는 선사 시대의 문화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달성의 석기 시대]
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도구를 만든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가장 앞선 시기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시대이다. 돌을 떼어서 주로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와 갈아서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로 나누어진다.
구석기 시대의 문화적 특징은 수렵과 어로·채집을 생업으로 하는 채집 경제 단계로서,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떼어 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이다. 남한의 구석기 유적이 1970년대 공주 석장리 유적(公州石莊里遺蹟) 발견 이후 여러 차례 발굴되면서 경상북도 지역에서도 칠곡군 석적면 중리 지역과 안동시, 경주시에서 발견되었다. 낙동강 상류 지역과 중류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낙동강 중류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달성 지역에서도 이미 인류가 생활하였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달성 지역이었던 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유적에서 잔석기[細石器]를 포함한 석기 제작장이 조사되어 달성을 포함한 대구 분지에 처음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늦어도 후기 구석기 시대 전후로 판단된다.
신석기 시대인들은 구석기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갈돌, 돌괭이, 돌보습, 돌낫 등을 사용하였다. 또한 신석기 시대에 이룩한 중요한 발달 중의 하나는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토기를 사용함으로써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끓여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생활의 진전에 따라 씨족 사회가 형성되었다. 신석기 문화는 대구 분지 전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초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전의 달성 지역이었던 진천천 유역으로 달서구 유천동 248-1번지 유적, 월성동 1275번지 유적, 상인동 119-20번지 유적, 대천동 413번지 유적이 최근 발굴 조사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또 금호강 유역의 달성군 달천리 135유적 등 주로 하천의 충적지에서 신석기 시대의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들이 출토된 바 있다.
[달성의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청동기가 생산되어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철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때까지를 가리킨다. 청동기 시대는 안정된 농경 생활의 시작, 민무늬 토기의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0세기에서 4세기 말 또는 3세기 초까지로 본다. 청동기 시대 구성원들은 농경을 주로 하면서 사냥과 고기잡이를 병행하였으며, 일부 돼지와 같은 가축도 길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민무늬 토기 유적이 발견된 곳은 이전의 달성 지역인 달서구 상인동 구릉, 월성동 구릉과 달성군 화원읍 구릉, 화원읍 천내리 구릉 등이다. 특히 이 일대를 아우르는 달성 지역에는 많은 고인돌이 유존해 있었으나 도시의 확장에 따른 시가지의 정비로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고, 현재는 가창면 대일리·냉천리, 논공읍 금포리, 구지면 고봉리·평촌리, 유가읍 금리·유곡리, 화원읍 천내리 등지의 고인돌이 알려져 있다. 이렇게 고인돌이 밀집되어 분포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청동기 시대에도 달성 지역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달성의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 이어서 새로 유입된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초기 철기 시대는 철기 시대 중 기원전 4세기 말부터 기원 전후까지에 철기를 만들어서 사용하던 시기를 말한다. 초기에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조 쇠도끼[鑄造鐵斧]를 위시해 농구류·공구류가 우세하였다.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평안남도에서 주조틀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인다. 이때부터는 단조 철기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철제 농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토기가 나타났고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이 가속화되어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였다. 달성 지역에서의 초기 국가의 흔적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기록이나 유물 등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문산리 유적과, 널무덤[木棺墓] 수십 기가 조사된 월배 선산지 내의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유적이 잘 알려져 있고, 진한(辰韓) 지역에 있었던 12개 소국이 낙동강과 동해안을 중심으로 성립되고 발전하였던 것으로 본다면 달성 지역에서도 초기 철기 문화가 전개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