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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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Iron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김호동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쇠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기 시대에 이어서 새로 유입된 철기 문화 시대가 시작되었다. 철기시대란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서기전 300년경부터 삼국이 정립된 서기 300년까지를 말한다. 철기시대를 두 시기로 나누어 서기전 300년에서 서기 전후[혹은 기원후 100년]까지를 초기 철기시대로, 서기 전후[혹은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혹은 삼한 시대]로 구분한다. 한반도에서는 철기 유입 시기와 이미 정착되어 있던 후기 청동기 시대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초기 철기 문화에 후기 청동기를 포함하여 서기전 300년부터 기원 전후까지를 초기 철기시대로 편년하고 있다. 달성의 초기 철기시대도 이 틀 속에서 분류가 가능하다.
[달성의 초기 철기시대 유적]
달성 지역과 대구 지역에서의 초기 철기시대 유적은 달성 문산리 유적, 신천과 금호강의 합수 지점 양단에 발달한 독립 구릉의 침산 유적과 연암산 유적, 그리고 널무덤[목관묘] 수십 기가 조사된 월배 선상지 내의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유적과 북구 팔달동 유적이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북구 대현동 널무덤, 동구 신천동 621-1번지 유적의 내용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유구가 확인되거나 청동 유물이 출토된 지역으로는 달서구 월성동 선사 유적, 서구 비산동 유적(飛山洞遺蹟), 서구 평리동 유적(坪里洞遺蹟), 동구 신천동 유적, 동구 각산동 912-9번지 유적, 수성구 만촌동 유적(晩村洞遺蹟), 수성구 지산동 유적, 북구 서변동 유적(西邊洞遺蹟) 등이 있다.
[달성의 초기 철기 세력]
기원전 108년 한군현의 설치는 북방의 위만 조선이 멸망하여 위만 조선 유이민들이 경상도로 남하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만 조선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복합 문화지였다. 이러한 유이민들의 움직임은 고인돌을 축조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던 토착 집단에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이들이 가지고 왔던 발달된 청동기와 초기 철기 문화는 대구, 경주, 영천 등 경상도 지역의 사회 통합을 진전시켜 나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토 유물의 현황을 보면,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원 전후 시기까지 경상도 지역에서는 철기 유물과 함께 청동기 유물과 유적들의 출토가 현저하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선진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 집단이 대두하게 되면서, 고인돌을 축조하면서 생활을 영위해 오던 읍락 간에도 위계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읍락의 위계화가 점점 진전되어 나가면서 읍락 간의 격차가 심해지게 되어 어느 시기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사회적·경제적으로 하나로 통합된 국가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들 토착 집단들은 초기 철기 문화가 파급되면서 사회 통합을 진전시켜 하나의 읍락을 중심으로 다벌국(多伐國), 사로국(斯盧國), 압독국(押督國)[압량국이라고도 함] 등의 국가를 형성하였다. 대구, 영천, 경주 등 경상도 상하류에서는 청동기 문화, 초기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국가가 형성되었고, 김해 등의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가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