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침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372
한자 蒙古 侵入
영어공식명칭 Invasion of Mongolia
이칭/별칭 몽고와의 전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231년연표보기 - 몽고의 제1차 침입
발단 시기/일시 1225년 - 고려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던 몽고 사신 저고여가 살해됨
전개 시기/일시 1232년 - 몽고의 제2차 칩입으로 팔공산 부인사의 초조 대장경 소실
전개 시기/일시 1255년 - 몽고의 제5차 침입 때 대구·수성·해안의 주민들이 공산성에 입보
성격 몽고의 고려 침입

[정의]

13세기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

[역사적 배경]

1225년[고종 13]에 고려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던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 일행이 귀국 도중 압록강 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몽고는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1231년 살례탑(撒禮塔) 부대를 보내 고려를 침략하였으나, 귀주성(龜州城)에서 박서(朴犀) 부대의 항전 등 고려 군민의 저항을 받아 1232년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고려에 대한 몽고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자 최이(崔怡)는 1232년 6월 장기적 항전을 결의하고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해전에 약한 몽고군의 약점을 계산한 조치였다. 몽고는 고려의 강경한 자세에 자극되어 1259년 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29년 동안 6차례나 침입해 왔다.

[경과]

1232년[고종 19] 몽고의 제2차 칩입으로 인해 팔공산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 대장경(初雕大藏經)이 소실되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3차, 제5차 침입 때도 경상도에 몽고군이 침입하였으므로 달성군 지역의 피해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1255년에 몽고의 제5차 침입 때 대구(大丘)·수성(壽城)·해안(解顔)의 주민들이 공산성(公山城)에 입보하였는데, 그것이 길어지자 공산성에 들어간 백성들은 굶어 죽는 자가 심히 많아서 골짜기를 메웠고, 심지어 아이를 나무에 붙잡아 매어 두는 자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듬해 현풍현 주민을 실은 배 40여 척이 몽고의 침략을 피해 낙동강 포구에 정박하자 몽고병이 그들을 쫓아 남녀와 재물을 포획하고 권농사(勸農使)·김종서(金宗敘)를 죽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를 통해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현풍(玄風)·화원(花園)·하빈(河濱)을 비롯해 공산성 부근에 있는 대구·수성·해안의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

제2·3·5차의 몽고 침입 때 경상도 일대가 유린되었는데, 이때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의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인사에 소장되었던 초조 대장경이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여원 연합군(麗元聯合軍)의 일본 원정 준비로 많은 수탈을 당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