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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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本 警察 - 巡査 殺害 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0년 12월 8일 김종철(金鍾喆)이 일본 경찰 가이[甲斐]를 살해하고 탈출한 사건.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국외에서는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무장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 자금과 독립운동가의 확보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에 따라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경과]
1920년 9월 송두환(宋斗煥)은 김종철과 함께 중국 남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광복군 사령부 참모장 이탁(李鐸)을 만나 이탁으로부터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금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같은해 12월 6일 송두환은 김종철에게 권총을 주어 김봉규와 함께 경상남도 지역에 가서 군자금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두 사람은 먼저 경상남도 합천군 상백면 우조리(牛助里)의 정달락(鄭達洛)에게서 군자금을 받아낸 뒤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의 남정구를 찾아갔다. 12월 8일 송두환과 김종철이 남정구에게서 군자금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의령 주재소 순사 2명에게 검거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종철이 가이를 죽이고, 순사 손기수(孫騏秀)에게 중상을 입혔다. 일제 관헌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연인원 500명의 인력을 동원했으나 범인 검거에는 실패하였다.
3년 뒤인 1923년 11월 3일 최윤동과 이수영이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사는 홍정수(洪禎修)에게 군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체포되고, 이어 관련자들이 체포되면서 가이 순사 살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곧 가이 순사 사망 때 체포되어 가던 사람이 김종철과 김봉규임이 드러났고, 또 이들과 함께 무기를 가지고 군자금을 모금한 인물이 송두환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
사건 발생 직후인 1920년 12월 21일 송두환은 가이 순사 사망 사건에 연루되어 마산에서 박종식과 함께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과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일제 관헌의 엄중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1921년 2월에 석방되어 위기를 넘겼다. 송두환은 김종철과 함께 다시 중국 만주로 가는 도중 신의주에서 검거되어 가이 사건을 재추궁받았다. 이 과정에서 송두환은 검사의 인정 조서와 인정 판결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22년 8월 2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김종철은 만주로 탈출하여, 상해로 가서 김원봉(金元鳳)·이종암(李鍾岩) 등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상해·만주 등지를 왕래하면서 1928년까지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국외 독립운동을 위해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가운데서 일본 순사 살해 사건이 발생하였다. 일제가 이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제2 경북 중대 사건'으로 규정할 정도로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