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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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川 左岸 |
이칭/별칭 | 신천 유역의 고인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민선례 |
[정의]
대구광역시 신천 좌안에서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개설]
대구광역시 상동 부근에서 대구분지로 유입되어 대구 지역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금호강에 합류하는 신천 일대에는 다수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주로 상류 쪽은 ‘신천 우안’, 중·하류는 ‘신천 좌안(新川 左岸)’에 집중된다. 신천 우안에는 상동 고인돌을 중심으로 대구 파동 고인돌, 대구 중동 고인돌이 확인되며, 신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자연제방 위에 만들어진 고인돌들이다. 신천 좌안에서는 대구 이천동 고인돌, 대구 대봉동 고인돌을 비롯하여 대구 삼덕동 고인돌, 대구 동문동 고인돌, 대구 교동 고인돌, 대구 태평로 고인돌, 대구 칠성동 고인돌,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 등이 확인된다. 구 신천과 대구천의 지류 사이 자연제방 위에 들어선 고인돌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신천 일대에 다수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있음이 알려졌고, 1927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에 의하여 이천동 고인돌[구 대봉동 고인돌] 제2구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다. 대구 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발굴 조사였다.
신천 유역에서 확인되는 고인돌 유적의 특징은 주거 공간과 무덤 공간이 구분되어 배치되었으며, 신천과 나란히 남북 방향을 따라 길게 열상으로 분포한다는 점, 군집하는 석관묘군의 배열에 정형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대구 상동 고인돌[상동지석묘군], 대구 상동 1-64번지 유적, 대구 이천동 고인돌 등을 보면 한정된 범위 내에 매우 밀집된 분포를 보이며, 최소 3~4기[卍형 배치]에서 최대 10여 기 정도까지 소군집화하여 축조되었다. 또 하나 신천 유역에서는 다수의 고인돌 유적이 확인되었지만, 묘역지석묘 또는 선돌, 제사 의례를 위한 시설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현황]
신천 좌안의 고인돌 유적들은 무덤의 숫자나 밀집 양상도에서 신천 우안에 있는 고인돌 유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현저히 적다. 또한 고인돌의 분포 양상도 남북이 아닌 동서 방향으로 확인된다. 대구천이 신천 범람원 하단의 금호강과 합류하면서 상습적인 범람과 침수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서 방향의 미고지에 고인돌 유적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신천의 반복되는 범람과 유로 변경으로 인하여 안정된 농경 생활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며, 고인돌 축조의 중심은 하류에서 점차 상류로 이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