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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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都氏 |
영어공식명칭 | Seongju Do Clan |
이칭/별칭 | 팔거도씨(八莒都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달성군 다사읍 서재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세욱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15년 - 도흠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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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63년 - 도흠조 사망 |
본관 | 성주 - 경상북도 성주군 |
입향지 | 서재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
세거|집성지 | 서재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
세거|집성지 | 용산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 |
성씨 시조 | 도순 |
입향 시조 | 도흠조 |
[정의]
도순을 시조로 하고 도흠조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연원]
『경술보(庚戌譜)』 「수성시조(受姓始祖)」 편에는 도씨(都氏)의 시조를 도계(都稽)라고 기록하였다. 도계는 전한 기주(冀州) 위군(魏郡) 여양현(黎陽)[현 허난성 허비시 쉰현] 출신으로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여가(呂嘉)의 반란을 평정하여 임채후에 책봉되고 도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고대방(典故大方)』과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에서는 백제 개루왕 때의 평민 도미(都彌)를 원시조로 보기도 한다.
이후 고려 창업에 공훈을 세웠던 도진(都陳)이 정승에 올라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책봉되고 식읍으로 하사받은 성주(星州)에 세거하였지만, 이후의 세계(世系)가 명확하지 않아서 후손들은 고려 명종(明宗) 때 전리상서(典理尙書)를 역임한 도순(都順)을 시조로 삼았다.
성주도씨는 팔거현(八莒縣)[현 경상북도 칠곡군]을 중심으로 벼슬지에 따라 여러 곳에 분거(分居)하여 대구파·평양파·성주파·단성파 등 8개 파로 나뉘었고, 이후 32개 분파를 형성하였다. 특히 대구파는 18세에 이르러 양직당공파(養直堂公派)를 비롯하여 22개 파로 나뉘었다.
[입향 경위]
성주도씨는 경상좌도 병마우후를 역임한 도흠조(都欽祖)[1515~1563]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이주하면서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서재리와 달서구 용산동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현황]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성주도씨는 5만 4545명으로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대구 지역 성주도씨 관련 유적으로, 서재리의 용호서원(龍湖書院), 용산동의 병암서원(屛巖書院), 동계서당(東溪書堂), 치경당(致敬堂), 오강재(梧岡齋), 동계재(東溪齋), 용호재(龍湖齋), 명곡재(椧谷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