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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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相吉 |
영어공식명칭 | Kim Sangg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926년 12월 29일 - 김상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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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3년 - 김상길 대구상업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3월 - 김상길 태극단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5월 9일 - 김상길 태극단 결단식에서 관방국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5월 25일 - 김상길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 김상길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몰년 시기/일시 | 2018년 4월 22일 - 김상길 사망 |
출생지 |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학교|수학지 | 대구상업학교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215-5]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태극단 단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상길(金相吉)[1926~2018]은 1926년 12월 2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가계]
김상길의 아들은 김영남·김영진·김용준이다.
[활동 사항]
1943년 3월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상길은 서상교(徐尙敎)·이상호(李相虎)와 함께 태평양쟁의 전황 및 아시아 각 나라의 동향, 일제의 민족 차별, 독립의 필연성 등에 대하여 논의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김상길 등은 구한말 조선이 사용하였던 태극기를 본떠 ‘태극단’이라는 단명을 정하고 약칭을 T·K·D라고 하였다. 태극단은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국내에서의 투쟁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항쟁을 이어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상길 등은 결성 이후 단원이 26명으로 늘어나자 5월 9일 대구 앞산에서 정식으로 태극단 결단식을 거행하고 조직을 구성하였다. 태극단의 조직 체계는 일반 조직과 특수 조직으로 구성되었는데, 일반 조직에는 활동을 총괄하는 관방(官房)과 체육 2개국 산하에 군사·무도·경기·등산·항공·박물·이화 등 8개부를 두었다. 특수 조직인 건아대(健兒隊)는 중학교 1·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들 가운데 민족의식이 높고 실천력과 책임감이 높은 학생들을 가입시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때 김상길은 관방국장과 군사부장을 맡았다.
1943년 5월 23일 한 학생의 밀고로 단장 이상호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이상호의 집에 숨겨 두었던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각되었다. 5월 25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김상길은 서상교·김정진(金正鎭)·이준윤(李浚允)·이원현(李元鉉)·윤삼룡(尹三龍)·정광해(鄭光海)·이태원(李兌遠)·정환진(鄭晥鎭)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김상길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단기 5년 이상 장기 7년형을 언도받았으며, 인천소년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상길은 2018년 4월 22일 사망하였다.
[묘소]
김상길은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15-5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상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총동창회는 2003년 대구상원고등학교 후문 인근에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2003년 10월 19일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