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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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鉉求 |
영어공식명칭 | Shin Hyeongu |
이칭/별칭 | 신옥(申鈺),성당(誠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9월 20일 - 신현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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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신현구 탁지부 세무주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10월 1일 - 신현구 경상북도 서기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8월 1일 - 신현구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 수훈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1921년 - 신현구 평안북도 운산군수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신현구 평안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1945년 - 신현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신현구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49년 3월 - 신현구 반민특위 경북조사부에 자수 |
몰년 시기/일시 | 1975년 4월 19일 - 신현구 사망 |
출생지 | 봉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친일반민족행위자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이사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신현구(申鉉求)[1886~?]는 1886년 9월 20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조선총독부 관료와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친일 반민족 행위에 앞장섰다. 호는 성당(誠堂)이며, 신옥(申鈺)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신현구는 대한제국 탁지부 세무주사와 재무서 주사를 지냈고, 조선총독부 설치와 함께 경상북도 서기가 되었다. 1912년 8월 1일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2년부터 평안북도 운산군수를 지냈고, 운산군수 재직 시 평안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맡았다. 1921년 경상북도 의성군수로 재직 중 군수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1922년 상주군수가 되었고, 1926년부터 1931년까지 달성군수를 역임하였다.
신현구는 1932년부터 일제의 관변단체에 참여하여 영남명덕회 이사, 1933년 대구녹화협회 평의원, 1938년 동양유교연합회 발기인과 매일신보 경상북도지사장,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 이사와 영남명덕회 부회장,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평의원을 역임하였다.
신현구는 1941년 경상북도 도회 의원이 되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면서 조선총독에게 “징병제 실시에 대한 황국청년연성의 방법으로서, 각 도에 1개 이상의 정신도량을 설치하여 일본정신을 앙양시키고, 국체본의를 투철시켜야 한다”라는 자문 의견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신현구는 광복 후 1949년 3월 14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경북조사부에 자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