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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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錫鎭 |
영어공식명칭 | Lee Seokj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경제인.
[개설]
이석진(李錫鎭)[1870~1932]은 한말·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했던 경제인이다. 카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쓴 『대구이야기(大邱物語)』에 의하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석진은 ‘풍채가 당당하고 성격이 온후하며 독실한 군자형’이었다고 한다. 카와이 아사오는 일찍이 대구에 들어와 『조선민보(朝鮮民報)』를 발행하였다.
[가계]
[활동 사항]
이석진은 1906년에 설립된 대구어음조합의 조합장을 맡았고, 1906년 6월 자본금 20만 원으로 설립된 대구농공은행의 은행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석진은 대구농공은행의 주식 700주를 소유한 주주였다. 1908년 대구농공은행과 진주농공은행의 합병으로 경상농공은행이 설립되었을 때도 은행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석진은 일본인이 추진한 달성공원 조성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달성공원 조성 사업은 대구의 일본인상업회의소가 1907년 3월 달성공원기성회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고, 사무실을 일본인상업회의소 내에 두었다.
이석진은 대구의 일본인 자본가와도 기업 활동을 펼쳐 1911년 대구전기주식회사 설립에 참여하였다. 대구전기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 초반 대구의 대표적인 일본인 기업가 이와세 시즈카[岩瀨靜]의 후계자로 지목되던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주도하고, 한국인으로는 이와세 시즈카와 교분이 깊었던 서상돈(徐相敦)이 깊이 관여하였다. 이석진은 대구전기회사의 감사로 선임되었다. 1923년 관덕정(觀德亭)[관덕당(觀德堂)]을 수리하여 대구사범학교가 설립될 때 이석진은 500원에 달하는 큰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이석진은 1932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