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54 |
---|---|
한자 | 大邱農工銀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개항기 대구광역시에서 일제가 설립한 금융 기관.
[설립 목적]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는 1906년 3월 칙령 제13호로 「농공은행조례」를 공포하고, 4월 칙령 제4호로 「농공은행 설립에 관한 건」을 공포한 뒤 ‘한국에서 농업과 공업의 개량과 발달을 위하여 자본을 대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울의 한성농공은행을 시작으로 전국 11개 지역에 농공은행을 설립하였다.
대구농공은행은 1906년 6월 자본금 20만 원으로 설립되었다. 중역으로 은행장 이석진(李錫珍), 전무이사 서병오(徐丙五), 이사 김병순(金炳淳)·정규옥(鄭圭珏), 감사 서상돈(徐相敦)·이장우(李章雨) 등이 선임되었다. 실무 책임자인 지배인은 일본인 쯔찌야 히코타로[土屋彦太郞]였다. 대표적인 주주는 서상돈, 서병오, 이석진, 김병순, 정규각, 이진옥, 이중래, 최만달, 이장우, 염보근, 이상악, 이병학, 조용태 등이었다. 대구농공은행은 1908년 8월 농공은행의 합병 추진에 따라 진주농공은행과 합병하여 경상농공은행으로 개편되었고, 경상농공은행은 1918년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개편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농공은행은 일제가 식민정책의 하나로 설립한 은행으로 설립 당시 표방한 목적과는 달리 한국에 이주하여 온 일본인들의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