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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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寄席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석배 |
[정의]
일제 강점기에 재담, 만담, 야담 등을 들려주던 대중적 연예장.
[개설]
대구광역시에 처음 등장한 요세[寄席]는 1912년 무렵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개관한 낭화관(浪花舘)[나니와칸]으로, 활동사진 상설관이던 대구구락부를 요세로 전환한 것이다. 1928년 이마모토 시미즈[今本善造]가 개관한 영락좌(永樂座)[에이라쿠자]도 요세이다.
[변천]
1911년 쓰지소노 지로[辻園次郞]가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79번지 대구중부교회 자리에 활동사진 상설관인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를 개관하였는데, 얼마 뒤인 1912년에 요세인 낭화관으로 전환하였다. 『키네마 레코드』[1915년 12월호]에 의하면 당시 나니와칸에서는 부산의 욱관(旭館)에서 출장 와서 영업하고 있었는데, 야마초[山長] 일행의 「화벌(花筏)」을 상연하고 있었다.
1928년 8월 4일에는 이마모토 시미즈가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 요세인 영락좌를 개관하였고, 1928년 8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나니와부시[浪花節]의 중진인 히로사와 교후[廣澤曉風] 일행을 초빙하여 개막 공연을 하였다. 1930년 무렵에는 닛카쓰[日活] 영화를 상영하는 활동영화 상설관 영락관(永樂舘)[에이라쿠칸]으로 바뀌었으며, 1943년에 개축하고 대구동보영화극장(大邱東寶映畵劇場)[대구도호영화극장]으로 관명을 바꾸었다. 해방 후 영락관이라고 하였다가 1946년 8월 1일부터 자유극장으로 바뀌었으며, 2002년 3월에 폐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