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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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祈雨祭 |
영어공식명칭 | Giuje|Ritual for Rain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진 |
[정의]
대구 지역에서 가뭄에 비를 내려 달라고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기우제(祈雨祭)는 가뭄이 심할 때 하늘, 곧 자연신에 게 비가 내려 달라고 비는 제사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기우제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에 해당하는 제사가 아니라 별도의 제사였던 기고제(祈告祭)에 해당하는 제사로 분류되어 있다. 농업국가에서는 기후변화가 중요하며, 특히 벼농사의 경우 강우량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비가 농민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수리 시설이 부족하였던 옛날에는 기우제를 자주 지낼 수밖에 없었다. 민간이나 지방관청에서도 기우제는 연중행사처럼 이루어졌다.
[기우제의 방법]
기우제의 일반적인 절차는 동제를 지낼 때와 비슷하다. 제관을 선출하고, 소머리, 돼지, 닭, 술, 과일, 포 등의 제물을 차리고 신을 청하여 부르는 강신(降神), 술을 올리는 헌주(獻酒), 축문을 읽는 독축(讀祝),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 순으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는 동제를 지낼 때와 비슷하지만 이후에 기우제만의 방법들이 추가된다. 정형화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방법은 대략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산상분화(山上焚火)라고 하여 한밤중에 장작더미나 솔가지 등을 산 위에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 것이다. 양기(陽氣)인 불로 음기(陰氣)에 해당하는 물을 부른다는 관념에서 비롯한 방법이다. 둘째, 기우제 기간에 마을 사람들이 물병을 처마 끝에 거꾸로 매다는 방법과 부인들이 키[箕]로 강물을 퍼서 머리에 이고 온몸을 적신 채 뭍으로 오르내리기를 되풀이하는 방법이다. 셋째, 비가 내릴 때까지 장터를 옮겨서 계속 장사를 하는 시장 옮기기 방법이다. 넷째, 기우제를 올리는 장소나 시장에 용(龍)을 그려 붙이거나 용의 형상을 만들어서 비는 방법이다. 이는 용이 비와 구름을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섯째, 부정화(不淨化)라고 일컫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용소(龍沼), 용연(龍淵) 등에서 개를 잡아 피를 뿌리거나 머리를 던져 넣어 그곳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면 용이 부정을 씻어 내리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전한다. 여섯째, 묘파기라 하여 가뭄이 계속되면 누가 몰래 암장(暗葬)한 것으로 보고 산을 뒤져 묘를 파내고 매장된 시체를 드러내 놓았다. 그렇게 하면 부정화와 같이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명산에 매장을 하면 부정을 씻을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의 기우제]
『대구읍지』에 수록된 「경우각(慶雨閣) 기문」을 보면 당시 가뭄이 백성에게 끼치는 영향과 목민관의 기우제가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비가 내리는 것을 기뻐하며 여수각(如水閣)에서 작은 잔치를 열고, 이를 기념하기고자 비가 내리는 것을 기뻐한다는 뜻을 가진 ‘경우’로 편액을 내린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2018년에는 대구광역시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지역 가뭄 해소를 위하여 상징적으로 수성구 기우제를 지냈다. 중구의 연귀산 거북바위나 수성구의 형제봉은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기우제를 지내는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 지역에서 기우제 전통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농업사회에서 기우제가 가지는 의미는 생업과 연관되어 중요하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기우제를 중요시하지 않고 전통시대 제의에 관심이 없어지다 보니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