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0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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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植 |
영어공식명칭 | Park Tae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할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박태식(朴泰植)[1909~?]은 1909년 5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감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혁우동맹(革友同盟)·적우동맹(赤友同盟)·일우동맹(一友同盟)에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박태식은 대구공립보통학교[현 대구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12월 14일 신우동맹이 비밀결사 조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결성한 혁우동맹에 참가하였고, 손익기(孫益基)를 책임으로 하는 야체이카[세포] 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2월 26일 ‘조선의 정치적 독립’, ‘모순된 사회현상 타파’, ‘만일 평등 신사회 건설’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혁우동맹이 적우동맹(赤友同盟)으로 전환할 때도 참여하였다. 이후 적우동맹은 4월 30일에 일우동맹(一友同盟)으로 조직을 변경하고 ‘맑스주의적 혁명 전술의 함양’과 ‘학생운동을 실천적으로 행한다’라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1928년 3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의 일본인 교사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자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생들은 학생 자치, 희생자의 복교(復校), 일본인 교사 파면, 교장 실책 인정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투쟁으로 인하여 대구 지역 학생 비밀결사 조직이 발각되어 박태식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9년 10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고, 1930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형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이후 박태식은 일본 도쿄[東京]에 유학하여 1936년 주오대학(中央大學) 전문부 법과를 졸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