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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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相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배상연(裵相淵)[1889~?]은 188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재건 달성친목회와 관계를 맺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활동 사항]
배상연은 성주의 지주로 수확한 미곡은 별도의 점포 없이 왜관의 미곡상과 거래하였고, 성주에 소금 점포를 운영하였다. 1912년 이후 서상일(徐相日)의 태궁상점과 거래를 하였다. 배상연은 1913년경 서울의 여인숙에서 재건 달성친목회 회원 박영모와 만나 교유 관계를 맺었으며, 태궁상점과의 거래를 통하여 홍주일(洪宙一)·편동현(片東鉉) 등과도 교유하였다.
배상연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서상일 등과 만나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배상연은 독립운동 자금을 희사하라는 서상일의 요청에 약속어음 1만 원을 제공하였고, 서상일은 약속어음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김응섭을 통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냈다.
배상연은 1919년 6월 무렵 왜관에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대구로 이송되었고, 6월 30일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구류 처분을 받았다. 1920년 3월 22일에는 경성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내란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으나 면소 처분으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