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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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Ston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윤정식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돌을 활용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
[개설]
석기시대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도구를 만든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가장 앞선 시기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시대이다.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기로, 돌과 돌을 서로 부딪치거나 두드려 떼어서 제작한 뗀석기[타제 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한 구석기시대와 돌들을 여러 가지 형태의 용도로 갈아서 제작한 간석기[마제 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한 신석기시대로 구분한다. 혹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로, 작고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섬세하고 치밀하게 제작된 작은 뗀석기인 잔석기[細石器]를 사용한 중석기를 포함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구석기시대]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로, 구석기시대 동안 인류는 채집과 사냥을 하고 살았으며 이동 생활을 하였다. 인류의 발생 직후에도 자연석이나 나무 등을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석기를 제작한 흔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 유적(公州石莊里遺蹟)과 충청북도 청원군 두루봉 동굴 유적,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漣川全谷里遺蹟) 등이다.
달성 지역에서의 구석기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드문 편인데, 과거 달성이었던 오늘날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유적에서 잔석기를 포함한 석기 제작장이 조사된 바 있어 달성 지역을 포함한 대구 지역 분지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늦어도 후기 구석기시대 전후로 판단하였으나, 2017년 달성군 하빈면 감문리에서 중기 구석기 유물이 확인됨에 따라 달성 지역에서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이자, 대구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를 중기 구석기 전후로 앞당겨졌다.
[신석기시대]
지구의 기온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하여 빙하가 후퇴하고 이전에 비해 온난 다습한 기후 조건이 되면서 변화된 기후 조건에 따라 인류는 원시적인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부터 금속기가 사용되기 전까지를 신석기시대라고 한다. 신석기시대에는 농경 생활을 하고 토기와 간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주로 해안이나 강가에서 생활하였다. 신석기시대인들은 구석기시대의 뗀석기에 비해 더욱 발달한 간석기를 사용하였으며, 구석기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갈돌, 돌괭이, 돌보습, 돌낫 등을 통해서 도구의 다양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토기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끓여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생활의 진전에 따라 씨족 사회가 형성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해안이나 하천 유역뿐만 아니라 구릉과 산지까지 유물 포함층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들 유적에서는 간석기·토기·골각기 등이 발견되고, 또 때로는 금속기를 포함하는 등 그 계통은 다양하다. 따라서 석기시대로부터 금속 기구를 사용할 때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땅에 여러 가지의 문화가 뒤섞여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농경의 시작이 마을 형성의 요인과 새로운 문화 발전의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면 달성 지역도 신석기 문화의 확산 영역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행정 구역상 달성군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초기 신석기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전의 달성 지역이었던 진천천 유역이나 금호강 유역의 달성군 달천리 135 유적 등 주로 충적지에서 신석기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들이 출토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