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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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興寺 |
영어공식명칭 | Unheu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헐티로 1068[오리 1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
[건립 경위 및 변천]
운흥사(雲興寺)는 신라흥덕왕(興德王)[826~836] 때 승려 운수가 창건하여 동림사(棟林寺)라 하였다고 구전되지만 관련된 기록은 없다. 창건 당시의 위치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고 산 정상부에 자리하였다고 한다. 절이 3개 군의 경계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자 당시 주지가 절을 조용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더니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앞의 연못을 메우면 된다고 하였다. 이에 연못을 메우니 신도들이 하나도 오지 않아 절을 곡산(谷山)으로 옮겨 수암사(燧巖寺)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역시 신도가 없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절 이름을 운흥사로 바꿨더니 번창하였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운흥사에서 승병 300여 명을 지휘하여 왜적을 격퇴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다. 1620년(광해군 12)에 무념 대사(無念大師)가 중창하였고, 1757년(영조 33)에 치화 대사(致和大師)가 중건하였다. 이 무렵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대구부(大邱府) 불우(佛宇) 조에 '최정산운흥사'가 실려 있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1954년에 승려 윤조가 후불탱화를 봉안하였고, 1966년에 승려 영봉이 대웅전을 보수하고 요사채를 옮겨 지었다. 1972년에 승려 초우가 대웅전 삼존 불상을 개금한 후부터 신도가 급증하였다. 1976년에 승려 설극 재문이 선불장(選佛場)과 선방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는 법당 앞의 마당을 확장하고 축대를 고전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1984년에는 석등 2기를 세웠다. 1992년에 단청을 하였고, 1998년에는 종각을 지었으며, 2016년에는 새로운 법당 준공을 앞두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운흥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최정산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솟구친 최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아래로는 대구광역시의 상수원인 가창댐을 굽어보고 울창한 숲이 외호하는 자리에 다소곳이 틀어앉아 있다. 비슬산 북동 비탈면에 북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형적인 산지 가람이면서도 산지 중정식 가람 배치와는 그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쪽 좌우에 종무소와 요사채가 대향하고 있다. 대웅전 배면에 삼성각이 배치된 'ㄷ' 자형 배치이며 근년에 전면 축대와 육각정(六角亭)을 건립하여 전반적으로 옛 모습이 많이 상실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건물로 외2출목 내3출목의 다포계(多包系) 양식을 지니고 있다. 살미의 모양은 앙서[仰舌: 끝이 위로 삐죽하게 휘어 오른 쇠서받침]형으로 끝부분이 비스듬히 자른 것으로 조선 후기의 수법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데 여기서는 독특하게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불(挾侍佛)[부처를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는 불]로 하고 있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전면 세 칸의 'ㄷ' 자형 법당이 2016년 완공을 예정으로 신축되고 있다. 대웅전 뒤쪽에 있는 삼성각은 납도리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 건물로 내부에 1958년에 만든 칠성 탱화(七星幀畫)와 1989년에 조성된 산신 탱화(山神幀畫)와 독성 탱화(獨聖幀畫)가 있다. 그 밖에 근래에 조성된 운흥사 사적비와 도로 불사 공덕비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