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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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Ston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김남석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석기와 토기를 사용하던 원시 시대.
[개설]
구석기시대 인류는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를 주요 도구로 이용하였다. 처음에는 거친 돌을 사용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밀한 뗀석기인 주먹도끼를 제작하였다. 그 후 격지를 이용하여 밀개와 긁개 등의 도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주먹도끼를 활용하여 짐승을 사냥하였고, 긁개와 밀개를 이용하여 가죽에 붙은 살을 긁어내거나 나무껍질을 벗겨 내는 등 여러 가지 용도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뗀석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들어서서 훨씬 정교해졌고, 슴베찌르개나 좀돌날과 같은 도구로 발전하였다. 슴베찌르개는 창끝에 묶어 사용한 창날이고, 좀돌날은 나무에 끼워 톱으로 활용한 도구이다. 이들은 뗀석기와 간석기의 중간 형태로서 잔석기라 부른다.
인류는 기원전 약 1만 년경에 들어서 신석기 문화를 탄생시켰다. 토기와 간석기로 대표되는 이 시기 문화는 원시 농경에 의한 식량 생산 경제를 배경으로 전개되었다. 신석기시대는 청동기가 발명되는 기원전 3000년경까지 가장 보편적인 석기 문화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제주 고산리 유적으로 기원전 8000년경의 것이다. 또한 기원전 6000년경에는 본격적인 신석기시대가 전개되었다. 현재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서울 암사동 유적과 양양 오산리 유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약 200여 곳이 넘을 정도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인류는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전개하였고, 사냥과 채집 경제를 위주로 하였다. 무리 안에는 경험이 많은 연장자를 지도자로 삼고, 동굴을 중심으로 막집을 지어 임시방편으로 거주하였다. 이들은 채집에 한계에 부딪치면 곧바로 이동하였기에 주거지에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주 석장리에서 발견된 유적지를 보면 집터 안에 불을 피운 화덕 자리가 확인되기도 한다. 화덕 자리는 대전광역시 용호동 유적, 전라남도 장흥군 신북 구석기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불의 사용은 구석기시대 인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한편 신석기시대에 들어서 인류는 어로, 목축, 농경을 발전시켰다. 생산 경제의 발전으로 인류는 정착 생활이 가능해졌고, 부족 사회를 형성하면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갔다. 생산 경제의 시작은 ‘신석기 혁명’이라 부를 정도로, 인류에게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인류는 움집을 지었고, 중앙에는 화덕을 만들어 난방 장치를 조성하였다. 또한 시신을 독무덤이나 움무덤에 매장하였고, 농경이 발전하면서 원시 신앙도 출현하였다. 원시 신앙은 자연과 동물, 영혼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인간 능력의 한계를 보완해 주길 기원하였다.
[당진 지역의 유적]
당진 지역의 구석기시대 유물은 세 곳에서 발견되었다. 우선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 ‘큰한해’라는 마을의 조개더미[패총(貝塚)] 근처에서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차돌로 제작한 격지[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인데 7×5.2×2.1㎝ 크기의 뗀석기 1점이다. 또한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조방골’ 마을에서도 1996년 뗀석기가 발견된 바 있었다. 또한 석문중학교 향토 유물실에는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서 발견된 여러 면 석기 1점이 소장되어 있다.
한편 당진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물로는 조개더미·주거지·갈돌·갈판·가락바퀴 토기 등이 주목된다. 조개더미는 석문면 초락도리·삼봉리·교로리·대난지도·소난지도·고대면 당진포리 등에서 발견되었다. 조개더미는 사람들이 조개나 굴을 먹고 껍질을 버린 무더기를 말하는데, 당진의 조개더미는 굴 껍질을 주종으로 바지락·대합·소라껍질로 구성되었다. 이곳에서는 빗살무늬 토기·민무늬 토기와 같은 토기류, 갈돌·돌화살촉·돌도끼·홈자귀와 같은 석기류, 그리고 가락바퀴와 동물의 뼈, 토제소상 등이 수집되었다.
빗살무늬 토기는 석문면 초락도리 살막곶이와 대난지도에서도 발견되었다. 초락도리에서 발견된 토기는 바탕흙에 고운 모래가 많이 섞인 것으로, 몸통 부분의 두께는 0.9㎝쯤 되며 평행 사선으로 깊고 굵게 무늬가 그어졌다. 이들 유물은 해안가 낮은 지대의 남향한 밭에서 발견되었는데, 인근 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한편 대난지도 조개더미에서는 선을 그어 새긴 무늬와 눌러 찍은 무늬의 빗살무늬 토기가 있는데 선을 그어 새긴 무늬는 물고기 등 뼈 무늬이고 눌러 찍은 무늬는 짧은 빗금 마디 모양의 토기이다.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 일원에서 2011년 발굴된 주거지 1기와 패총 2개도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굴은 현대 제철이 발주하여 백제 문화재 연구원에서 시행한 일반 산업 단지 발굴 조사로 2011년 10월 10일부터 11월 21일까지 조사되었다. 이곳에서도 신석기시대 패총, 백제 주거지 및 수혈유구(竪穴遺構)[구덩이 모양의 집터], 조선 시대 유구(遺構)[집터] 등이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패총은 구릉 사면에 퇴적되었는데 지형적인 영향으로 상단은 얇고 하단으로 갈수록 두터워지는 양상을 보였다. 인근 주민의 경작과 민가 조성 등으로 파괴가 심하였지만,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편[櫛文土器片] 20점이 출토됨으로써 이 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당진 지역에는 약간의 구석기시대 유물과 다량의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들 유물이 발견된 지역은 당진시 석문면, 고대면, 송산면 등지로 당진 지역의 북면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부터 당진 지역 석기시대 인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해안가였고, 바다에서의 어로 행위가 주종을 이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당진은 해안선이 매우 잘 발달된 지역인 만큼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유적이 많은 곳에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