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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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下馬碑 |
영어공식명칭 | Stone Tablet Indicating that One Should Dismount from a Hor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학로 |
건립 시기/일시 | 1413년 - 당진 향교 하마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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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면천 향교 하마비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군 성상 2리 |
현 소재지 | 당진 향교 하마비 -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 1동 |
현 소재지 | 하마비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대호로 1533-6 |
성격 | 비석 |
재질 | 돌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면천 향교 하마비: 약 45㎝[가로], 95㎝[높이], 21㎝[두께]|당진 향교 대소 인원 개 하마비: 약 32㎝[가로], 79㎝[높이], 15㎝[두께]|석문 중학교 향토 박물관 소장 하마비: 약 40㎝[가로]|27㎝[높이]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앞에 세워 놓은 석비.
[건립 경위]
하마비(下馬碑)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운 비석이다. 서원이나 향교, 사찰뿐 아니라 왕이나 장군·고관·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기도 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인 듯하다. 기록에 따르면, 1413년(태종 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아 표목 전면에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라고 썼는데, 여기서 인(人)은 관직이 없는 사람이고, 원(員)은 관직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내리는 지점도 품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거리를 표시하였는데, 1품 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말에서 내려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표목은 후일 석비로 만들기도 하여 오늘날까지 그 실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다.
[위치]
당진시에는 세 개의 하마비가 있는데 당진시 면천군 성상2리 면천 향교 앞과 당진시 당진1동 당진 향교 앞, 그리고 석문면 석문 중학교 향토 박물관에 있다.
[형태]
면천 향교 하마비는 비신(碑身)[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의 크기가 가로 약 45㎝, 높이 95㎝, 두께 21㎝이다. 당진 향교 대소 인원 개 하마비의 크기는 가로 약 32㎝, 높이 79㎝, 두께 15㎝이다. 석문 중학교 향토 박물관에 소장된 하마비는 가로 약 40㎝, 높이 27㎝이다. 비신이 부숴져서 반쪽만 있는 상태로 비석의 크기는 더 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금석문]
당진 면천 향교에 있는 하마비의 전면에는 '하마(下馬)'라고 쓰여 있으며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당진 향교에 있는 하마비의 전면에는 '대소 인원 개 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적혀 있고, 후면에 '원납 김옥진 계미 오월일(願納金玉振癸未五月日)'이라고 쓰여 있으며 '지위가 높고 낮은 사람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석문 중학교 향토 박물관에 있는 하마비의 전면에는 '하마○(下馬○)'라고 쓰여 있으며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현황]
당진향교 하마비(下馬碑)의 원래 위치는 채운리 행동 마을 당진 3교 시작 지점에 있었던 것을 당진 향교 앞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면천 향교 하마비(下馬碑)는 면천 향교 앞 남쪽 방향 약 450m 앞에 있던 것을 향교 정문 앞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삼봉 초등학교 난지 분교장 교정에서 발견되어 병자호란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는데 현재 이 비 반쪽이 석문 중학교 향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하마비는 당진에서 향교와 서원을 통한 예절과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