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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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本堂監理敎會 |
영어공식명칭 | Bondang Methodist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손골길 76[본당리 27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철 |
설립 시기/일시 | 1950년 7월 15일 - 본당감리교회 교회 창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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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7월 15일 - 본당감리교회 창립 예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1년 - 본당감리교회 증축 |
이전 시기/일시 | 1971년 9월 - 본당감리교회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손골길 76으로 이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12월 - 본당감리교회 신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 본당감리교회 목양관 신축 |
최초 설립지 | 본당감리교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본당로 136 |
주소 변경 이력 | 본당감리교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손골길 76[본당리 275-1] |
현 소재지 | 본당감리교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손골길 76[본당리 275-1] |
성격 | 교회 |
설립자 | 심영자 |
전화 | 041-355-6241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본당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개설]
본당감리교회는 1950년에 심영자 권사의 주도로 창립되었다.
[설립 목적]
본당감리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본당리를 비롯한 주변 방계리, 광명리, 가교리, 옥호리 등 송악읍 및 순성면 일대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본당감리교회가 창립되기 전에 이미 본당리에 거주하던 심영자 권사는 세 아들 내외 및 손주들과 함께 기지시 감리교회로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명리의 진영희 권사와 그 자녀들, 가교리의 강승갑의 부모 등도 기지시 감리교회로 출석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이들이 기지시 감리교회로 출석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심영자 권사가 자기 집 사랑방을 기도처로 정하고 1948년 1월부터 심영자 권사의 인도로 기도처 기도회를 시작하여 주일 예배를 보게 되었다. 그 후 기지시 감리교회의 호의수 장로가 주일 오후에 와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는 등 기도처는 날로 부흥하여 방계리, 순성면 옥호리 등 여러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처로 나오기 시작하여 성도 수가 증가했다.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을 시작하여 1950년에는 심영자 권사의 집 옆에 6칸의 목조 건물 초옥을 교회로 건축하고, 1950년 7월 15일에 본당 교회 창립 예배를 보게 되었다. 창립하던 1950년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해로 국가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너무나 혼란한 해였다. 그 와중에도 본당 교회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건축되어 모든 신도들이 눈물 어린 기쁨의 첫 예배를 보게 되었다. 교회를 건축한 후 첫 목회자로 진순항 전도사가 담임으로 부임하였다. 1961년에 최병우 전도사가 제9대 담임자로 부임하고, 교회가 날로 부흥하여 자리가 협소하자 교회를 2칸 늘려 8칸으로 증축하고,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였다. 그리고 교회 옆에 있는 주택을 철거하고, 최병우 전도사는 광명리 본가에서 기거하였다.
1968년 1월 15일에 원창배 전도사가 제10대 담임자로 부임하였지만 기거할 장소가 없어서 최흥섭 신도의 집 아랫방에서 기거하다가 바로 그 옆에 흙벽돌 스레트 지붕으로 3칸 주택을 건축하였다. 그 후 교회가 크게 부흥하여 청소년들이 많이 나오고, 모든 신도들이 기도의 불이 붙어 매일 저녁과 새벽 기도에 열심을 다하며 봉사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심정섭 신도가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읍 본당리에 있는 자신의 밭을 교회 대지로 봉헌하여 그곳에 교회를 새로 짓기로 했다. 1970년부터 전 신도가 합심 단결하여 하천에서 모래를 실어다가 시멘트 벽돌을 자체적으로 생산해 놓았다가 1971년 3월 23일에 교회 건축 기공 예배를 보았다. 9월에 벽돌 건물 교회를 완공하였다. 이어서 1972년에는 교회 옆에 흙벽돌로 주택을 건축하였다. 예배당과 주택을 새롭게 건축한 후 교회는 놀랍게 부흥 발전하여 당진 지방에서 중류 이상의 교회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1989년 5월에는 흙벽돌 주택을 헐고, 조립식 주택으로 다시 지었다. 그리고 새 교회 건축을 위하여 100가마의 쌀 계를 조직하고, 전 신도가 총력을 기울여 기도에 힘쓰기 시작하여 1996년 8월 4일에 숙원이던 교회 건축 기공 예배를 보았다. 2000년 12월 완공한 3층 건물이 현재의 교회다. 이어서 2008년에는 함송기 담임 목사와 심재성 장로, 심재영 장로가 교회 주변 토지를 매입했으며, 구 조립식 주택은 철거하여 주차장으로 전환하고, 2층 건물 목양관을 새로 건축하였다.
본당감리교회는 1971년에 처음으로 이계복 권사를 신천 장로로 추천하였으나 1년급 시험만 보고 목회를 위하여 떠나자 장로 직분이 중단되었다. 그 후 1975년에 구자병 장로, 1977년에 윤희원 장로, 1979년에 심재성 장로, 1980년에 심호섭 장로, 1983년에 홍원선 장로가 취임하였다.
한편, 교회 창립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심영자 권사의 신앙은 후세 성도에게 감동을 준다. 심영자 권사는 일제 시대부터 기지시 감리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여 권사 직분을 받고 교회 일에 충성하였다. 심 권사는 미신 타파에도 열성적이었는데 1954년에 본당리 서낭당의 고목(古木)을 아들 최병기를 시켜서 베어다가 교회 난로 화목으로 사용해 버렸다. 이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아들을 멍석말이하여 몽둥이로 마구 때렸는데 이 모습을 본 심영자 권사는 아들이 순교한다면서 “우리 아들 병기가 죽어도 영광이다!”라고 하며 오히려 춤을 추었다고 한다. 본당감리교회는 이러한 신앙의 기반 위에 세워졌고, 예배당이나 목양관 등의 건축도 신도들이 대지를 봉헌하여 짓는 등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하여 왔다.
본당감리교회의 역대 담임자는 제1대[1950. 7. 15] 진순항 전도사, 제2대[1951~1952] 안덕창 목사, 제3대[1952~1953] 손용구 목사, 제4대[1953~1954] 이의세 전도사, 제5대[1954~1955] 신할빈 전도사, 제6대[1055~1958] 성용기 전도사, 제7대[1958~1960] 박재근 전도사, 제8대[1960~1961] 김은찬 전도사, 제9대[1961~1968] 최병우 전도사, 제10대[1968~1982] 원창배 목사, 제11대[1982~1984] 박재환 목사, 제12대[1984~1987] 전종근 목사, 제13대[1987~2001] 현무갑 목사, 제14대[2001~2004] 함용준 목사이며, 2016년 현재 제15대[2004.4~] 함송기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본당감리교회에서는 1954년에 순성 감리교회를, 1962년에 옥호 감리교회를 분리 개척하였고, 경건한 신앙 훈련으로 20명 이상의 목회자가 배출된 교회이다.
[현황]
2016년 현재 본당감리교회는 함송기 담임 목사를 비롯하여 장로 9명이 재직하고 있다. 교인 수 120여 명이며, 남선교회, 여선교회 등의 활동이 활발하다.
[의의와 평가]
본당감리교회는 송악읍 본당리를 비롯한 주변 지역의 복음화를 위하여 설립되었으며, 경건한 신앙 훈련으로 정통 감리교회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