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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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蘆海面秋收記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1914년 현재의 도봉구 창동 등에 소재한 토지에서의 수확물에 대한 도조를 기록한 책.
[개설]
『노해면 추수기(蘆海面秋收記)』[청구기호 奎 27673]는 1914년 당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두산리(斗山里), 즉 현재의 도봉구 창동 등에 소재한 전답의 추수기로서 토지에서의 수확물에 대한 도조(賭租)를 기록한 책이다. 양주군 노해면은 조선 시대의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과 해등촌면(海等村面)이 통합되어 1914년에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1914년 당시 이 지역에 토지를 소유했던 누군가가 소작을 주고 나서 8월 추구한 시점에 소작인들로부터 거둔 도조의 액수를 기록하였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추수기는 일반적으로 지주, 혹은 그를 대신한 마름이 개인적인 참고용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저자를 표기하지 않았고, 따라서 저자가 누구인지는 이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편찬/간행 경위]
『노해면 추수기』는 해당 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소작인들로부터 거둘 도조량을 결정하고 그것을 정확히 받아내기 위한 목적에서 1914년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이다.
[형태/서지]
한 권으로 되어 있으며, 규격은 가로 20.1㎝, 세로 22.5㎝이고, 표지를 제외하고 총 8매이다.
[구성/내용]
『노해면 추수기』의 표지에는 먼저 ‘갑인 팔월일(甲寅八月日)’이라고 하여 제작 시점을 기록하고 있고 ‘양주 노해면 두산리 추수책(楊州蘆海面斗山里秋收冊)’이라고 하여 제목을 기재해두었다. 본문의 기재 양식을 살펴보면 예컨대 “이완근(李完根) / 횡(橫) 15답(畓) 3야미(夜味) / 3복(卜) 4속(束) / 6두락(斗落) / 2석(石)”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맨 위의 이완근은 소작인, 즉 도조를 지불할 사람의 이름이다. 횡 15는 양안(量案)상에 기재된 자호와 지번을 말하며, 즉 오늘날의 번지에 해당하여 토지의 위치를 가리키며, 답(畓)이란 이 땅의 지목이 논임을 말한다. 3복 4속은 결부제에 의해 토지의 면적을 나타내며, 6두락은 파종량을 기준으로 한 면적을 말한다. 마지막 난의 2석은 이완근이 소작한 토지로부터 1914년 분의 도조로 2석을 거두었음을 말한다.
[의의와 평가]
제목은 모두 다르지만 이 추수기는 양주군 노해면 일대의 같은 토지에 대한 일련의 추수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1915년의 『양주 노해면 마산리 추수책(楊州蘆海面馬山里秋收冊)』[奎 27665], 1916년의 『양주 노해면 두산리 추수기(楊州蘆海面斗山里秋收記)』[奎 27666], 1921년의 『양주군 노해면 상계리 반곡 추수기(楊州郡蘆海面上溪里盤谷秋收記)』[奎 27674] 등과 같은 지역의, 거의 같은 필지에 대한 도조량을 기록하고 있다. 1914년부터 1921년까지의 8년 가운데 4년 분의 추수책이 남아 있으므로, 이 시기의 수확량과 도조량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