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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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西洞全州李氏廣平大君派集姓村 |
이칭/별칭 | 동족 마을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400~50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승모 |
변천 시기/일시 | 1495년 - 광주 학당리에서 수서동으로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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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입지 |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집성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400~500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3~4호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집성촌.
[개설]
광평대군 후손들이 세거해온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일대는 궁말 혹은 궁촌이라 일컫는다. 이곳에 1981년 2월 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된 광평대군 묘역이 있다. 이 묘역 일원은 대모산(大母山)에 자리하고 있으며 궁말, 혹은 궁촌이라 불렀다. 총면적 414,006.612㎡의 산에 광평대군 내외의 쌍분 묘와 720여 기의 후손 묘가 있다.
[형성 및 변천]
광평대군은 장의공(章懿公) 이여(李璵)다. 그는 1425년(세종 7)에 태어나서 1432년에 광평 대군으로 봉하여졌고 1444년(세종 26)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원래 묘소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선릉 부근인 광주 학당현(學堂峴)에 있었으나 그곳에 성종의 능인 선릉이 들어서면서 1495년 3월에 이곳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묘역에는 광평대군을 비롯하여 그가 세종으로부터 봉사손으로 명을 받은 무안대군(撫安大君) 이방번(李芳蕃), 광평대군의 아들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 혜정공(惠定公) 이유(李濡), 이현응(李顯應), 이회(李廻)의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이곳에는 광평대군의 사당(祠堂)인 정묘(正廟)가 있어 대군과 그 부인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을 비롯하여 무안대군 내외와 영순군 내외 등 3세대의 제사를 함께 모셔왔다. 사당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되었다. 사당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궁말이란 마을에 있던 광평대군의 집에 따로 지어 제사하던 것을 1911년 10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필경재(必敬齋)는 광평대군의 증손, 즉 영순군의 둘째 아들 이영(李嶸)의 둘째 아들인 정안부정(定安副正) 이천수(李千壽)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여기서 혜정공 이유, 충정공 이후원(李厚源), 희곡(希谷) 이지연(李止淵) 등 3명의 정승이 배출되었다.
[자연 환경]
광평대군파 묘역은 수서동 광수산(光秀山)에 자리하고 있다. 광수산은 대모산과 별개의 산으로 기록된 예도 있고, 광수산 이름은 없고 그 일대를 대모산이라고 한 표기도 있다.
[현황]
묘역의 총면적은 414,006.612㎡, 즉 약 12만 5천 평으로 산소 외에 사당, 재실(崇慕齋), 종회당, 궁촌별묘, 종가, 그리고 숙종 때 건립한 세장비(世葬碑)가 있다. 이 묘역 일원은 서울 근교에 있는 왕손의 묘역 가운데 원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2012년 현재 궁말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들은 3~4호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