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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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瀧澤誠 |
영어음역 | Dakisawa Makot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정룡 |
[정의]
일제 강점기 강릉군수를 지낸 일본인 행정가.
[개설]
1926년과 1928년에도 강릉에는 두 명의 일본인 군수가 있었다. 그러나 1931년에 강릉군수를 역임한 다키자와 마코토[瀧澤誠]의 행적은 남달랐는데 성현의 발자취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죽헌 보호활동과 율곡, 신사임당 선양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강릉고적보존회를 결성하여 향교 및 지역문화를 보호하였고, 향토지 발간활동에도 노력하였다.
[경력]
1931년부터 1935년까지 강릉군수를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임영지(臨瀛志)』에 그의 활동사항이 들어 있는데 “향교재산을 오봉서원, 송담서원, 유천서원 삼소의 제향비로 보조하고 우복 정경세의 흥학비를 다시 세웠고 『임영지(臨瀛志)』의 증보와 향교의 실기를 사림과 같이 편집했다. 흉년에 기민의 구제에 극력하고 고전보존회를 창건하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1977년 10월 10일 강릉군수를 역임한 후, 43년 만에 89세의 나이로 강릉시를 다시 찾은 다키자와 마코토는 “그 옛날을 속죄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31년부터 35년까지 강릉군수를 지낸 다키자와씨는 재직 시 강릉 일원의 고적 보호 등에 큰 업적을 남겨 당시의 반일 감정 속에서도 비교적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받던 인물이다. 특히 오죽헌 보호 업적은 이율곡 선생의 유적이 현재까지 보존·계승되고 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하였다.
당시 4백여 년 동안 오죽헌을 관리해 오던 권씨 문중이 채무관계로 채권자인 함경도의 친일계 갑부에게 오죽헌의 소유권이 넘어갈 위기에 놓였을 때, 군수인 다키자와씨가 강릉고적보존회를 조직, 은행에 자신이 보증책임을 서고 기채를 받아 채무를 변제케 한 후 10년 분할 상환으로 갚게 하였다.
[저술]
다키자와 마코토 군수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호 박원동, 김병환 등 지역 유림과 힘을 합쳐 강릉고적보존회 이름으로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를 냈고,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일본어판과 『강릉향교실기』를 재간하여 향토사를 재구성한 점이다.
[의의와 평가]
다키자와 마코토는 역대 강릉군수 가운데 지역문화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특히 율곡, 신사임당 선양에 노력을 경주한 인물로 향교와 서원을 지원하고 지역유림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며 유학관련 책자의 발간과 향토지의 재출판에 노력하여 지역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