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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576
한자 靈山辛氏二孝一烈之閭
영어음역 Yeongsan Sinssi Ihyo Illyeol Jiryeo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Yeongsan Sin Cl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177번지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열각
양식 와가 맞배지붕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
관련인물 신세린|신세린의 처 강릉김씨|신붕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177번지
소유자 영산신씨 종친회

[정의]

영산신씨 신세린(辛世麟), 신세린의 처 강릉김씨, 신세린의 아들 신붕(辛鵬)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효열각.

[개설]

신세린(辛世麟)의 처 김씨(金氏)는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으며, 남편이 죽자 다락에서 떨어져 같이 죽으려고 하였으나 집안사람들이 구해주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씨는 늘 애통하게 울면서 간장을 먹지 않았다. 소상(小祥)을 맞아 또 죽으려고 하였으나 구조되어 죽지 못했다. 평생 동안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빗지 않았으며, 날마다 피죽을 조금씩 먹을 뿐이었다. 봄가을로 남편의 새 옷을 지어 놓고 불살랐다. 이러한 열행이 관에 알려져 정려를 받았다.

신붕(辛鵬)신세린(辛世麟)의 아들이다. 신붕은 평생 어버이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초상(初喪)을 당하여 어머니가 더운 방에서 자지 아니하자 자기는 거적을 깔고 밖에서 잤다. 임진왜란 때 신붕이 어머니를 업고 난을 피해 가다 적에게 붙잡혔는데 적들이 죽이려고 하자 어머니를 안고 애걸하였더니 내버려 두고 그냥 가버렸다. 어머니가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시자 간장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3년 동안 묘막(墓幕)에서 살면서 동문(洞門)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때 신붕의 나이가 60세였는데 3년 동안 죽만 먹고 지냈으나 아무런 병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길 하늘이 도왔다고 하였다.

[명칭유래]

신세린과 아들 신붕의 효행과 신세린의 처 강릉김씨의 열행으로 ‘이효일렬지려(二孝一烈之閭)’라고 이름 붙여졌다.

[건립경위]

신세린과 아들 신붕, 그리고 신세린의 처 강릉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위치]

강릉시 대전동 177번지로 강릉에서 사천 방향으로 가는 7번국도변 우측에 있다.

[형태]

효열각은 단층와가 맞배지붕으로 정면은 홍살문이고 나머지 3면은 나무 판으로 둘려져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금석문]

2기의 비석이 있는데, 하나는 신세린과 처 강릉김씨의 효열비이고 또 하나는 아들 신붕의 효자비이다.

[현황]

영산신씨 종친회에서 소유와 관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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