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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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戰鬪記念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9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주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6월 25일 - 6·25전쟁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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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63년 4월 24일 - 호주 전투기념비 건립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83년 12월 27일 - 호주 전투기념비 재건립 |
현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91-1 |
원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91-1 |
성격 | 현충시설물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4.6m |
관리자 | 가평군 |
[정의]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호주군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건립 경위]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호주는 유엔의 6·25전쟁 참여 호소에 가장 먼저 응답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의 대외 정책을 따르고 있었으며, 자국의 안보 위협을 빠른 시기에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하였다.
6·25전쟁에 호주군은 육군 2개 대대와 함정 4척, 전투 비행대 1개 대대, 수송기를 1대 편성하여 지원하였다. 특히 호주군은 가평, 마광산 및 37도선 근방의 전투에 연합군으로 참전하였으며,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연전을 포함한 지상전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호주 공군의 경우 전투 요원 및 폭탄 투하와 영국연방 공군기의 공중 보급을 하였으며 후송 작전에도 참여하였다. 호주 해군은 9대의 모함을 이용하여 해안을 봉쇄하고 포격하였다.
1950년 호주군 3대대는 대구에서 김포까지 돌진하였다. 1951년 4월 24일에는 가평군 북면에서 벌어진 가평전투에서 호주군은 중국군과 대치하여 승리하였다. 가평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호주군은 영국군 제27여단과 함께 복무하였고 이후 제29 영국연방 여단에 편입되었다. 호주군은 6·25전쟁에 참여하여 전사자 311명, 부상자 1,230명의 피해를 보았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군 최대의 희생이었다. 호주 전투기념비는 중국군을 상대로 한 가평전투에서 승리한 호주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1963년 4월 24일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이 건립한 것이다. 가평군은 1983년 12월 27일 호주 전투기념비를 재건립하였다.
[형태]
호주 전투기념비는 0.82m의 기단 위에 4.6m 높이로 세워졌다. 호주 전투기념비 오른쪽에는 전투 현황도를 기록하였고, 왼쪽에는 참전 약사를 적었다.
[금석문]
호주 전투기념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와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이 땅에서 공헌한 오스트레리아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길이 역사 속에 보전하기 위하여 이곳 옛 격전지에 기념비를 세우다.
[현황]
호주군이 승리로 이끈 가평전투는 호주에서 중요한 의미로 기억되고 있다. 4월 23일은 호주 현충일로 지정되었으며, 시드니에는 ‘가평’의 이름을 붙인 거리가 존재한다. 또한 가평군과 자매 결연을 맺었다.
호주 전투기념비 맞은편에는 뉴질랜드 참전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