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466
한자 祈子
영어공식명칭 Worship of Son-Giving Deities
이칭/별칭 기자 신앙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아이의 출생을 기원하기 위해 비는 행위.

[개설]

기자 신앙은 아이의 탄생을 기원하기 위해 비는 행위로서 출생 의례의 일부이다. 오늘날도 아이를 바라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경우가 있지만 시험관으로 아기를 낳는 시술이라든지 기타 의학적 도움이 적었던 과거에는 기자 신앙이 강하였다. 아이를 낳고자 하는 소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명산대천, 거목, 거암, 부처, 미륵, 삼신할머니나 칠성신 등에게 치성을 드리거나 다산을 한 여성의 속옷이나 아기의 배내옷, 금줄 등을 몸에 지니거나 배개 속에 두기도 하고 미륵의 코를 조금 떼어 갈아먹거나 약재를 다려먹는 행위를 낳기도 한다. 치성을 드릴 때는 부인 이외에 남편이나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함께 하기도 한다. 치성의 날수에 따라 삼일기도, 칠일기도, 백일기도 등 다양하다. 치성을 드리는 공간에 따라 산에서 하는 산치성, 절에서 하는 절치성, 집에서 하는 집치성 등으로도 분류해 볼 수 있다. 산치성의 경우에는 산에 있는 샘, 암석, 거목 등에서 치성을 많이 드리며 절치성은 부처님이나 산신이 대상이 되며 집에서는 삼신께 올린다. 집 밖에서 치성을 드리게 되더라도 삼신이 아이를 점지해 주는데 효험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

[연원 및 변천]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은 한 가정의 존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혼사를 치룬 후 수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으면 온 집안의 걱정거리가 된다. 오늘날은 시험관을 통해 아이를 갖기도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방법이 없던 과거에는 열심히 공덕을 드리고 용하다는 기도처에서 빌거나 주술에 의존하기도 했다. 오늘날도 이러한 방법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민간 신앙에 의지하여 자식을 비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풍속이 언제부터 행해진 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소망이 있고 인간이 신앙심을 가진 이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사례]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 이화영은 열일곱살에 동갑내기 남자를 만나 이화리에서 시집을 왔다. 시집 온지 3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어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뒤꼍에 청수를 떠놓고 빌었다.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와서 손을 잡고 괜찮다고 하며 새애기가 어려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지신보다 1년이나 늦게 결혼한 시누이도 벌써 애를 가졌다는 데 자신에게는 소식이 없어 애가 탔다. 하루는 친정어머니가 복장리 나루터까지 오셔서 무엇인가를 건네주며 이불 밑에 넣어두고 자라고 하여 그렇게 했더니 얼마 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후에 고모가 와서 친정어머니가 준 것을 달라고 하여 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나중에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태워버렸다고만 하고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 친정마을인 이화리에서 출산한 산모의 옷이거나 아기의 태반 같은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한다.

가평군 북면 제령리 강복순은 12세 때 8세 많은 남편과 혼인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와 같이 잠을 자다가 15살때부터 남편과 합방을 했다. 하지만 몸이 냉하여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화악산 같은 곳에서 나는 만삼이나 구절초를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고 하여 먹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춘천에서 막골로 이사와서 동네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춘천에서 냉이 풀리는 한약을 지어와서 그것을 먹고 임신이 되었다. 양지말 최양순 집에서는 집 뒤 약 30m 떨어진 곳에 자연석을 미륵으로 모신다. 최양순의 시할머니는 아들이 없어 미륵을 모시고 빌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이후 이 댁에서는 미륵을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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