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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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岳山 祭祀 |
영어공식명칭 | A sacrifice to the Hwaaksan Mountain God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덕묵 |
의례 장소 | 화악산 제사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범바위 남서쪽 제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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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신제 |
의례 시기/일시 | 조선 시대에 봄과 가을에 가평군에서 지냈음 |
신당/신체 | 북면 목동 범바위 남서쪽 제사터에서 제를 지냈으며 신당과 신체는 현재 없음, 화악산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제를 지냈음 |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화악산 산신에게 지내던 제사.
[개설]
화악산에는 기우제와 별개로 화악산신에게 제를 지내기 위해 화악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신단을 설치해두었다. 호국 신사로 있다가 조선 초기에 일반 산신으로 격하되었으나 조선 후기까지 고을에서 춘추로 제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가평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악산에서는 신라 때부터 이미 제도화되어 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봄, 가을에 수령이 주재하여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1429년에 국가의 승인을 받았으며 1437년(세종 19)에는 화악산의 제단의 위판에 ‘華岳護國之神(화악호국지신)’이라고 써온 것을 ‘호국’ 두 글자를 삭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호국신의 지위에서 일반 산신으로 격하하였다. 이때 읍내의 평지에 있던 제단이 산기슭으로 옮겨지는 조치가 취해졌다. 비록 화악산 산신의 위상이 호국신에서 일반 산신으로 격하되었으나 조선 후기까지 가평군의 주재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음을 18세기 중엽의 『해동지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화악산이 잘 보이는 북면 목동에 있는 화악천 다리에서 화악천 상류 방향으로 200여 미터 가면 도로가에 야산 높이의 상봉에 절벽으로 형성된 범바위가 있다. 멀리서 보면 범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이곳 범바위 남서쪽에서 화악산을 향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과거 이곳에 신단이 있었는지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절차]
화악산 제사의 절차에 대한 소개는 기록에 전해지고 있지 않다.
[현황]
조선 시대 국가에서 행한 화악산 제사는 현재 단절되어 지내지 않고 있다. 다만 범바위 위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목동 주민들이 지내는 산제당이 있어 현재 주민들은 이곳에서 마을 단위의 제를 지내고 있으나 과거 국가에서 행한 제사와는 성격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