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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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德公立普通學校抗日運動 |
영어음역 | Heungdeok Gongnip Botong Hakgyo Hangil Undong |
영어의미역 | Heungdeok Public General School Anti-Japanese Movement |
이칭/별칭 | 흥덕공립보통학교 3·1만세운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순철 |
[정의]
1920년 고창 지역의 흥덕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발단]
흥덕공립보통학교 5~6학년 학생 150여 명은 고종의 승하를 애도하는 자리를 학교에서 마련해 주지 않자 2월 4일부터 애도를 표하고 근신하기 위해 5일간 휴학하기로 결의하고 등교하지 않았다. 1920년 3월에는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이종주(李鍾柱)·유판술(劉判述) 등은 기념 시위를 통하여 민중 궐기를 촉구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드높이기로 결의하였다.
[경과]
3월 10일 이종철·이대성·이종주·유판술 등은 태극기 12장과 앞면에 ‘대한 독립’, 뒷면에 ‘이를 파기하는 자는 참살하겠다’는 경고문을 붙인 깃발을 만들어 성내면사무소 구내 빈터에 세웠다. 그리고 태극기를 곳곳에 붙여 놓아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곧 흥덕면 주재소의 일본 경찰들에게 알려졌다.
[결과]
흥덕보통학교 항일 운동 관련자들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1921년 1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원에서 이른바 보안법을 위반한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옥사한 이종주에게는 1991년과 1992년에 애국장과 애족장이 서훈되었고, 유판술은 1990년 애족장이 애족장에 서훈되었다.
[의의와 평가]
흥덕보통학교 항일 운동은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학생들이 손수 태극기를 만들어 실천에 나서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하였던 뜻 깊은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