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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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抗日學生運動 |
영어음역 | Hangil Haksaeng Undong |
영어의미역 | Anti-Japanese Studuent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순철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항일 운동.
[개설]
학생 운동은 전국적으로 볼 때 일관된 조직을 가지고 전개된 운동은 아니었다. 즉, 노동·농민·여성 형평 운동과 같이 전국 단위의 조직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1920년대 초 학생운동은 주로 ‘동맹 휴학’의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이때의 주요 쟁점은 ‘학내 문제 해결’과 ‘일본인 교원 배척’ 등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으로 가면 학생운동이 조직화되면서 ‘식민지 교육의 철폐’와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요구하였다.
1920년대 전반의 학생 맹휴를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1921년부터 1928년까지 사립학교로는 고창고등보통학교가 6회로 가장 많았고, 공립학교로는 광주고등보통학교가 가장 많았다.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항일학생운동은 암치보통학교 항일 운동, 고수면야학교 항일 운동, 고창공립보통학교 항일 운동, 흥덕공립보통학교 항일 운동, 고창고등보통학교 항일 운동을 들 수 있다.
[활동 내용]
고창 지역에서는 3·1운동과 6·10만세운동 당시의 만세 시위 그리고 불량한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기 위한 동맹 휴학의 형태로 항일 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비밀 결사 조직과 활동이 독서회 형태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3·1운동 당시에는 흥덕공립보통학교와 고창보통학교를 중심으로, 6·10만세운동 당시에는 고창공립보통학교와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가 있었다. 동맹 휴학 또한 고창고등보통학교가 주도하였다.
특히, 고창 지역에서는 악질적인 일본인 교사들을 배척하기 위한 학생 맹휴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23년 9월 암치보통학교 5~6학년 학생 80여 명이 5일부터 동맹 휴학을 하였는데, 사건의 발단은 주무교사인 구와바라[桑原篤信]의 음주로 인한 행패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선생을 교체해 달라는 진정서를 교장에게 제출한 데서 비롯된다.
이로 인해 구와바라는 고창보통학교로 전임되었으나, 새 학교로 부임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 또다시 문제를 야기하였다. 이에 1924년 2월 11일 저녁 9시에 임시 학부형 회의가 열렸다. 사건은 2월 1일 차가운 날씨에 밖에서 운동을 하던 2학년 학생들이 잠시 추위를 피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간 것을 문제 삼아 구와바라가 학생들을 폭행하면서 발생하였다. 이에 고창보통학교 학생들은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후원을 받아 동맹 휴학에 들어갔다. 학부모들은 전임지인 암치보통학교에서도 물의를 일으킨 구와바라를 인사 조치해 줄 것을 결의하고 군청과 도청에 각각 진정하였다. 이후에 관련 보도가 없어 그 결과를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결과가 어떻게 끝이 났든 일본인 교사를 상대로 투쟁을 계속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1929년에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비밀결사 조직인 S[Socialism]당이 결성되었다. S당은 무장면 출신의 김명환(金明桓)이 중심이 되어 만든 지하 조직이었다. 그는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 배종인(裴宗仁)·정병규(丁炳圭)와 함께 비밀리에 회원을 모집,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0년 1월 21일 광주학생사건의 동정 궐기 시위 행사가 발각되어 같은 해 2월 13일 관련자 11명이 검거되고, 정병규는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1930년 2월에는 고창고등보통학교 1학년생 김영덕·김선근·천성현·박동희 등 4명이 일본 사람이 경영하던 요리점 벽에 불온 문구를 쓴 것이 밝혀져, 22일 고창경찰서에 붙잡혀 들어갔다. 이들은 각각 15일 간의 구류 처분을 받았으나, 2월 26일 가출옥 형식으로 석방되었다. 2월 21일에는 만세 사건 선동 혐의로 고창청년동맹위원장 우섬(宇閃)이 전주경찰서에 검거되고 27일에 정읍검사국으로 호송되었다.
이밖에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한글 강연회가 고창 지역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1926년 12월 11일 중앙고등보통학교 권덕규(權悳奎)가 고창고등보통학교에서 ‘한글의 연혁’, ‘언문의 연구법’ 등을 강연하여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